[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가 探究記 1' (하이경 작가)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가 探究記 1' (하이경 작가)
  • 권도균
  • 승인 2017.12.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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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H] '중년 여성의 시각으로 일상을 그리는 화가 하이경의 풍경 이야기'

중년이 되면 힘들게 달려온 인생이 어느 순간 무상하다는 생각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의 삶이나, 꽃다운 청춘을 가족에게 올인한 주부의 삶이나, 어떤 삶을 살던지,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대한 회한을 갖는 것은 모두 매한가지다. 인생무상에는 빈부의 차이도, 성별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경, '집으로 가는 길'. oil on canvas, 72.7x60.6cm, 2017.
하이경, '집으로 가는 길'. oil on canvas, 72.7x60.6cm, 2017.

현명한 공자는 나이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고 명명한다. 아마 공자도 오십이 되어보니, 정치에 뜻을 두었던 과거의 삶이 덧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는지 모른다. 나이 오십이 되면 비로소 지혜로워져,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유교의 천명이란 기독교 하나님 말씀이고, 불교의 윤회와 깨달음의 원리이며, 도가 철학의 우주를 관통하는 길이다. 지천명을 삼라만상의 무상한 이치를 알게 되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하이경, '리조트'. oil on canvas, 72.7x90.9cm, 2017.
하이경, '리조트'. oil on canvas, 72.7x90.9cm, 2017.

공자가 파악한 지천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년이 되어보니 인생이 허무하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삶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을까? 인생이 별거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였을까?

하이경 작가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중년 여성의 허무감과 고독감을 예술로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작가에게 행복이란 일상에서 소소한 추억을 골라내서, 기억을 더듬어 시각언어로 기록하는 것이다. 스쳐 지나간 과거의 기억들은 캔버스에 그려질 소재가 되고, 캔버스는 이성적 사유와 감성적 느낌을 담아내는 장소가 된다.

작품 속에는 작가의 다중적인 마음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관람자 자신의 마음으로 작품을 다르게 느끼고 이해하기도 한다.

하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2013년 2월 북촌 갤러리 시절, 신진 작가 공모전을 통해서였다. 그때는 미술에 대한 기초 상식조차 없던 시절이라서, 작가들과 별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했었다.

당시에는 초대전을 할 때마다, 모 대학 미대 여자 교수님을 정기적으로 초빙해, 전시 작품을 비평해주는 시간을 가졌었다. 비평을 들으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신진 작가 공모전 심사를 통과한 열 명의 전시 작가 중에서 하 작가는 두 번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이듬해인 2014년 개인전을 해주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갤러리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작가도 바빴어서, 약속은 자연스럽게 미루어져버렸다. 그리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하이경, '장마'. oil on canvas, 53x72.7cm, 2017.
하이경, '장마'. oil on canvas, 53x72.7cm, 2017.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2017년 4월 어느 날, 하 작가가 동료 작가와 갤러리에 우연히 놀러 왔다. 몇 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전시 약속을 못 지킨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차에 술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술을 마시면서 과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냈다. 작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결국 2018년 봄에 개인전을 하기로 하고, 대구 아트 페어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이 기분 좋게 받아들여졌다.

주관적 관점에서 보면, 하 작가의 작품의 특징은 시점 또는 관점의 독특함에 있다. 관찰자 눈의 시작점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매력을 주는 것 같다.

일반적인 눈 높이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에서 밑을 내려다 본 풍경, 위로 올려다 본 천장의 순간적 풍경, 아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바닥 표면과 그림자, 유리창 표면에 붙어 있는 작은 빗방울 등. 작가는 순간순간 다양한 각도에서,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사물들에 주목한다. 따라서 작품의 제목들도 평범하기 그지없다. 소나기, 장마, 하굣길, 집으로 가는 길, 바다 안개, 느린 시간 등. 

하이경, '소나기'. oil on canvas, 46x73cm, 2017.
하이경, '소나기'. oil on canvas, 46x73cm, 2017.

작품 세계를 하나로 뭉뚱그려 말한다면, 인간 내면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여성 작가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서정적인 따뜻한 느낌을 사계절의 변화를 동반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면, 왜 이런 것들을 굳이 그릴까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지극히 평범한 하루 이야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작품이 편안하게 울림으로 다가온다. 신기하게도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좋은 작품이란 단순하다. 그냥 보고 또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을 가리킨다.

하 작가의 작품에 내재해있는 고독이 때로는 관람자의 눈물을 흐르게 만들지 모른다. 어느새 작가는 고독과 친구가 된 듯도 하다. 작품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체감된 고독한 느낌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고독하고 슬픈 느낌을 연하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보여준다. 마치 아련한 기억처럼 말이다. 컬러사진보다는 흐릿해져가는 묘한 흑백사진 같은 느낌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어쩌면 몽환적인 느낌을 통해서 희미해지는 기억을 잡아보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하이경, '언덕(Hill)'. 65.1 x 90.9cm, oil on canvas, 2017.
하이경, '언덕(Hill)'. 65.1 x 90.9cm, oil on canvas, 2017.

일상에서 만나는 추억들이 작업의 소재가 되고, 기억을 토해내서 작품 속에 녹아들게 만든다. 관찰하기, 기억하기, 그리기, 바라보기는 하 작가 작업 방식의 근간이 된다.

젊은 시절 추구했던 치밀한 묘사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는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운 붓질을 추구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탓일 것이다. 일상 그리기와 자유로운 표현방식은 그 자체로 후련함을 준다고 한다.​

작가는 말한다. "묵묵히 작업하다 보면 완성되는 틀 안의 세상이 마치 인생살이의 축소판 같다고. 스스로는 삶과 닮아있는 그림 그리기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싶다고. 과정은 치열하되, 보이는 모든 것이 예사가 되고, 수선스럽지 않은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고.​

현재 삶의 모습과 캔버스에 그리는 내면의 모습이 동일시 되어가는 하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보는 시각은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는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일상이 담긴 일기장 같은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한 번쯤은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라고. 소소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해보고,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새로움을 느껴보라고. 과연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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