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보는 에로틱 아트, '욕망(LUST)'
박물관에서 보는 에로틱 아트, '욕망(LUST)'
  • 왕진오
  • 승인 2017.12.20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트인포=왕진오 기자]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4가지 선천적 욕구 중의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이자 수단인 동시에 쾌락을 동반하는 행위인 성욕에 대한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 '다양한 사랑의 방식'. 25.5x38.5cm, 대판 다색판화 12장, 에도 1812년경.(사진=화정박물관)
토미오카 에이센(1864-1905), '야쿠모의 언약'. 24.0x34.0cm,대판 다색 판화, 메이 .(사진=화정박물관)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동아시아권 전체를 통틀어 본격적으로 춘화를 조명해 보는 최초의 전시이자 감상의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학술연구의 대상으로 춘화를 통해 제작 당시 사회 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해 보는 LUST 전으로 9월14일부터 12월19일까지 화정박물관에서 은밀한 유혹의 손짓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숨어서 보는 그림’ 으로 알려진 춘화(春畵)를 박물관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하고 전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로 세간의 이목을 받고 있는 전시는 19세 이상 관람제한이 될 정도로 그 표현의 수위가 노골적이며 감각적인 것이 특징이다.

춘화(春畵)라는 회화작품은 현실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장 강렬하게 반영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성과 관련된 작품들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어 왔다.

'화정 박물관 특별전 Lust'.(사진=왕진오 기자)
'화정 박물관 특별전 Lust'.(사진=왕진오 기자)

집안이나 정원, 찻집 등의 일상적인 환경 설정을 설정함으로써 감상자가 화면 속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를 도입하였다. 동시에 일반적인 사회 통념상 부적절 하다고 간주되는 관계나 상황 설정 등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부적절하고 용인되지 못하는 가능성 자체를 감상자의 눈앞에서 실현시켜 일종의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환상을 충족시키는 기능을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소장자의 수장고 및 어두운 공간에 놓여있던 아시아 각국의 춘화를 지속적으로 수집해오던 중 전시를 기획한 한혜주 화정박물관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춘화는 수요와 공급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소장자들이 세상 밖으로 내놓길 꺼려 공개되니 못했던 춘화를 이번 기회를 통해 전시와 연구 대상으로 삼아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해 봤다”며 음란한 춘화가 아닌 해학적이고 당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난 ‘풍속화’인 춘화를 제대로 보고자 하는 전시 배경을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신윤복의 ‘사시장춘(四時長春)’에는 성인 남녀가 아닌 어린 여종만이 등장한다. 급하게 벗은 듯한 두 쌍의 신발과 술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갈지를 망설이는 여종을 통해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짐작하게 한다.

춘화의 에로틱함에는 시대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살며시 녹아 있다. 우리가 아는 야한 그림이 아니라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삶의 진솔함이 배어나는 독창적인 이야기로 한국 중국 일본의 춘화와 유럽의 에로틱 아트 등 네 가지 섹션으로 총 114점의 작품이 관객의 눈을 놀라게 하고 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 '다양한 사랑의 방식'. 25.5x38.5cm, 대판 다색판화 12장, 에도 1812년경.(사진=화정박물관)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 '다양한 사랑의 방식'. 25.5x38.5cm, 대판 다색판화 12장, 에도 1812년경.(사진=화정박물관)

중국실에는 청대에 제작된 춘궁화첩을 중심으로 명대의 작품부터 중화민국시대의 활판 인쇄물 등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진 작품이 선을 보인다. 중국의 춘화에선 대개 화폭 안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보통의 풍속화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들로 남녀가 벌거 벗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에로틱한 표현은 현대의 그것 못지 않게 다양하다.

남녀의 애정행각을 타인이 몰래 보는 그림, 여성 혼자 도구를 이용해 스스로 즐기는 모습과 여러 명이 뒤 섞인 장면이나 달리는 말 위에서 묘기하듯 사랑을 나누는 그림들이 보여진다. 적나라하기 보다는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해학적 느낌이 먼저 든다.

여성의 발에 대한 페티시즘도 강하다. 불단앞에서 무릅 꿇고 앉은 여성의 맨발을 연인이 뒤에서 몰래 만지는 그림과 전족을 본 딴 술잔 금련배(金蓮杯), 모조음경 등 성애관련 공예품들이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일본실로 눈길을 돌리면 얼굴이 민망할 정도의 장면이 가득하다. 풍경 속에 조용히 드러낸 한국이나 중국의 춘화와 다르게 남녀의 정사 장면이 화면 가득 확대되어있고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누가 그려 남겼는지 작가 미상이다. 

일본 춘화는 에도시대에 우키요에 채색 판화가 유행하면서 춘화가 대중화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현대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색채에서 일본다운 성에 대학 미학을 볼 수가 있다.

이들 작품들은 정색하고 오래 보기 민망하다. 그러나 세세히 관찰해보면 시대를 볼 수 있는 해학이 담겨져 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판화는 사랑을 나누다 잠이 든 남녀 앞에서 교미에 열중하고 있는 생쥐 한 쌍을 고양이가 방울 소리도 내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을 담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이다.

우타가와 쿠니요시(1796-1861), '하나이가타'. 22.0 x 15.0cm, 색판인쇄 반지본 3책,에도 1837년.(사진=화정박물관)
우타가와 쿠니요시(1796-1861), '하나이가타'. 22.0 x 15.0cm, 색판인쇄 반지본 3책,에도 1837년.(사진=화정박물관)

세크레툼(비밀)이라 이름 붙인 별실은 19세기 유럽에서 에로틱 아트를 비밀스럽게 공개하던 방식을 따라 만들어진 공간도 마련되었다. 19세기 초 영국박물관과 국립나폴리 고고학박물관 등에서 일부 허가 받은 사람에게만 극비리에 공개했던 에로틱 아트를 선보이는 자리도 함께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에로틱 아트 중에서도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은밀하면서도 해학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을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제작 당시의 사회상과 더불어 다양한 사람과 만남, 교류, 유혹의 형태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는 계기와 관련학계의 심도 깊은 접근을 위한 첫 번째 발판이 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을 받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