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회고전 연 이숙자 화백 "나는 대한민국 채색 한국 화가다"
[이사람] 회고전 연 이숙자 화백 "나는 대한민국 채색 한국 화가다"
  • 왕진오
  • 승인 2017.12.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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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50여 년 동안 붓을 들고 한국화(韓國畵)가 '한국 미술의 중심'에 서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화가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불철주야 화폭에 완성시키는 지향(芝香) 이숙자(74) 화백이 반 세기 화업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2016년 3월 2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함께한 이숙자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함께한 이숙자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초록빛 환영-이숙자'전은 2014년 '구름과 산-조평위'전, 2015년 '오채묵향(五彩墨香)_송영방'전에 이은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한국화 부문 세 번째 전시이다. 우리나라 채색화의 맥을 잇는 대표작가 이숙자의 '백두산'연작과 '이브의 보리밭' 그리고 드로잉과 자료 등 약 60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 화백은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직계제자로 유명하다. 196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입선 이후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에서 동시에 수상하며 독보적인 여성 한국화가로 발돋음을 했다. 특히 한국 고유의 채색화의 맥을 잇는 대표작가로 '보리밭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랐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층에 꾸려진 이숙자 화백의 전시장 입구에는 14.5m와 9m에 달하는 대형 '백두산' 그림 두 점이 시선을 압도한다. 평소 '보리밭 화가'라는 수식어를 떠올렸던 관객에게는 놀라움을 자아내는 풍경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함께한 이숙자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함께한 이숙자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지천명에 이른 1992년 본인의 화두였던 '한국성'을 구현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업을 남기고자 백두산을 그리기 시작한 작업이다. 1999년 직접 백두산을 등정한 후에야 백두산 천지를 담은 '백두산'(14.5m)를 2001년 완성했다.

이 화백은 "한국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서가 들어가야 한다고 믿었죠. 친근한 미의식과 공감성이 있어야 되는데, 바로 백두산에서 그것을 발견 했습니다. 천지를 본 이후 우리 민족의 영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오랜 기간 '한국화'가 화단에서 사그라지는 것에 대한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채색화가 우리 민족 전통에 뿌리를 둔 그림임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한국화'의 개념이나 성격이 확립되지 않은 70년대 이름만 부여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지적했다.

"채색화가 일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원래 뿌리는 우리가 가르쳐 준 것이다. 일본화의 생성은 한국화의 채색화인 고구려, 백제의 그것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한국화의 정체성 확립과 채색화의 정통성 수립이라고 하는 과제 의식은 반세기에 걸친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커다란 화두가 됐다.

'작업 중인 이숙자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작업 중인 이숙자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이 화백은 표면적인 소재 자체가 한국성의 표출에 미치는 영향을 크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공통된 정서와 같은 '내면적 기호'로서의 한국성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한국적 정서를 담고 싶어서 초기 민예품부터 보리밭, 소, 한글, 민족정기의 상징 백두산까지 작업의 소재를 끊임없이 확장시켜왔다.

민예품과 보리밭에 대해서 이 화백은 "우리의 과거 한의 정서와 통하는 것 같다. 보리밭을 그리다 소를 만났다. 소의 눈이 선량하고, 소의 등선이 회화적으로 보이는 것도 자연스럽웠죠. 우직하게 인간과 협조하고 저력있는 극복심이 바로 한국의 정서와 유사한 것 같다"고 말한다.

전시장 한편에 일산에서 옮겨온 이 화백의 작업실이 그래도 꾸려졌다. 매일 아침 9시에 집에서 이곳 미술관으로 향한다. 예전부터 그리던 '얼룩소'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80년대 스케치 해 놓은 작품으로 이번 회고전이 끝나기전에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적 소재의 작품들과 별도로 진행되어 오던 누드화는 1989년 '이브의 보리밭89'를 시작으로 '성스러움'과 '생명'에 대한 공통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브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의 이미지와는 다른, 당당하고 도발적이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작업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이숙자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작업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이숙자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남녀가 유별한지 몰랐는데, 남여 차별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죠. 인습에 의한 여성이 받는 불이익에 대한 저항으로 섹시심볼로서의 여성이 아닌 차갑고 강인한 모습을 그린 것 같아요."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 초록빛 환영-이숙자'전은 이숙자 화백이 작가시절 초기부터 자신의 주변에 대해서보다는, 민족혼이나 한국성, 한국화의 발전, 여성문제, 통일염원 등 역사적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채색화의 정통성과 한국화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헌신해온 이숙자의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반세기에 걸쳐 작가가 모색해온 '한국성'을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이 확장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전시는 7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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