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가 探究記 2 (홍푸르메 작가)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가 探究記 2 (홍푸르메 작가)
  • 권도균
  • 승인 2017.12.27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H] '먹으로 빛을 그리는 화가 홍푸르메의 추상 수묵화 이야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산이나 들과 같은 자연보다는, 빌딩이나 아파트로 가득 찬 도시의 편리함에 길들여져있다. 등산이나 골프를 통해서, 가끔씩 자연과 만날 뿐이다.

'홍푸르메 작가'.(사진=아트인포DB)
'홍푸르메 작가'.(사진=아트인포DB)

도심 속에 살다 보면,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보다는, 인공적이고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어 가는지 모른다. 마치 천연재료로 깊은 맛을 내는 음식보다, MSG가 주는 강렬한 맛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무와 흙과 같은 자연의 재료로 지어졌던 한옥 대신, 벽돌과 철근 그리고 콘크리트로 둘러 쌓인 네모난 아파트에 살다 보면, 담담한 수묵화보다는 오일 냄새 풍기는 강렬한 색감의 유화가 잘 어울린다는 관념을 갖게 된다.

이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인지 모른다. 밋밋한 숭늉 맛 같은 한국화보다는, 빨간색 캔에 담긴 톡 쏘는 코카콜라 같은 강렬한 색감을 자랑하는 유화가 요즘 한국 미술의 트렌드인 것은 현실이다.​

오래전에 비 오는 가회동에서 한국화 작가의 한옥 작업실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한옥의 실내는 모던하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검은색 기와에 운치 있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그림 같은 한옥의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느낀 밤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잠시 맛본 기분이었다.  

'홍푸르메 작가 마니프 출품작'.(사진=왕진오 기자)
'홍푸르메 작가 마니프 출품작'.(사진=왕진오 기자)

2015년 가을의 날씨 좋은 어느 날,  김성복 교수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마니프 아트페어에 구경 갔었다. 김 교수가 세련되고 기품 있어 보이는 여자 작가 한 명을 소개해준다. 살짝 쑥스러워서, 그냥 인사만 나누고 싶었다. 멋쩍게 인사를 하자마자, 자신의 작품을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산 고신대 교수면서 한국화 작가란다.

한국화라면 분명히 고리타분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다. 한국화는 세련되지 못하다는 편견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못해 작가를 따라갔다. 그러나 작품을 보는 순간 놀랐다.

어떻게 오직 먹만 가지고 이렇게 세련되고,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의 놀란 표정을 알아차린 홍 작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전시 작품들을 연신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다. 작가님, 작품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멋지네요.

그날 저녁, 홍 작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데, 홍 작가가 부산에서 산다고 이야기했다. 작품에 만족한 나는 2016 아트 부산에 작품을 출품해달라고 제안했다.

부산의 맛 집도 소개해줄 겸, 작품 판매를 떠나서, 부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날 때면, 기분이 무척행복해진다. 그래서 그날은 행복한 하루였다.

2016년 여름, 홍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부산역에 차를 몰고 와서 픽업해주었다. 작가의 따뜻한 마음씨에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아트 페어 기간 동안, 전시장에서 신기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부산 관람객들은 작품만 보고도, 홍 작가 작품 여부를 쉽게 인지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2012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선발된 작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영화제 모든 스폰서 홍보물에 작가의 이미지가 실렸어서, 자연스럽게 작품 홍보가 되었다고 한다.

'홍푸르메작가 마니프 출품 작품'.(사진=왕진오 기자)
'홍푸르메작가 마니프 출품 작품'.(사진=왕진오 기자)

홍 작가의 작품은 기존의 한국화 또는 동양화가 주는 고루함이나 식상함을 넘어선다. 오로지 먹 하나만으로, 세련미와 단순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연출해낸다. 작가는 삼매에 든 수행자처럼,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모아서 단숨에 그린다.

붓을 잡는 순간, 고도의 집중력과 여백에 대한 치밀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작품 몇 개를 그리고 나면, 몸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가끔 안부 전화를 하면 몸이 아파서 골골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작가라는 숙명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수묵화에서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을 안 한다. 유화나 아크릴은 덧칠을 할 수 있지만, 먹으로 그리는 작품은 실수를 복구할 방법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 붓글씨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한 번에 글씨가 잘 안돼서 덧칠을 몇 번 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덧칠은 쉽게 티가 났었다.​

대표님, 저는 매일 스테이크 몇 개 값의 종이를 버린답니다. 30년 올곧게 작품에만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이 만족하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비싼 종이를 과감히 버린다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40년쯤 하니까 이제 비로소 예술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런데 요즘은 배접 장인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작품을 완성해도 유능한 배접 장인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홍 작가가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작품을 통해서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미술 치료로 박사학위를 한 영향일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현대인들의 불안함과 외로움, 그리고 삶의 고단함을 치유하기 위한 마음의 다스림을 추구한다. 그래서 작품의 주제가 힐링과 성찰을 위한 수묵화다.​

작가는 동 서양 조형예술의 특징인 서양의 빛과 동양의 여백의 조화로운 융합을 시도한다. 작가는 무한 상상의 세계를 빈 공간으로 남겨둔다. 그런데 이 여백의 공간은 관람객에게 쏟아지는 빛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산수화에서 여백을 눈 오는 풍경으로 많이 표현한다. 하지만 여백을 빛의 형태로 그려낸 한국화 작가로서는 최초가 아닐까? 심심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작가의 작품에서 검은 먹선이 주인공일까? 아니면 빈 공간이 주인공일까?

작가의 아버지께서 목사님이셔서, 작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엄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면서,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정신과 기독교의 엄격한 규율이 서로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과 성경 말씀은 작가에게 힘들고 지치는 작업을 버텨내는 힘이었을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서양의 기독교 정신을 동양화의 기법과 재료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빛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보여주는 신의 존재성이다. 한국화에 빛의 도입은 어쩌면 신앙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가 그린 것은 분명 한국화인데, 빛의 도입으로 인하여 서양화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빛의 느낌은 분명 서양화의 특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홍푸르메 작가 마니프아트페어 출품 작품'.(사진=왕진오 기자)
'홍푸르메 작가 마니프아트페어 출품 작품'.(사진=왕진오 기자)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백색으로 보았던 조선시대의 유교는 청빈함을 추구한다. 새하얀 한지와 검은 먹은 세련됨의 완성인 블랙 앤 화이트이고, 동양 정신의 산물이다. 공간의 존재성의 드러남은 동양화의 특징이다.

작가는 공간의 존재를 머릿속 계산하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구상과 달리, 추상 한국화는 더욱더 공간의 존재성에 대한 계산을 치밀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먹을 뿌리고 나면 이미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화 또는 동양화의 특징은 집중력과 일필휘지(一筆揮之) 정신의 결과물이다.

서양 예술이 보이는 외적 세계를 다각도로 표현한다면, 동양 예술은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양 예술이 현란한 색감의 완성이라면, 동양 예술은 담백한 선의 완성이다.

서양화가 물질의 쌓음이고 공간의 채움이라면, 동양화는 물질의 덜어냄이고 공간의 드러냄이다. 서양화가 3D와 접목된 디지털 카메라면, 동양화는 2D의 흑백 아날로그 카메라다. 동 서양의 각기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예술 작품을 대하는 관람자의 취향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자극적이지 않은 나물 무침이 좋아진다. 그리고 단순함, 담백함, 소박함, 밋밋함, 느림, 비움, 자연스러움, 이런 단어들이 좋아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 것이라고 반드시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좋은 것들은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보존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물줄기 같은 흐름이라서, 단절시키면 안 되는 것이다. 물줄기의 시원이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고, 문화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