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현 화백, '마대, 물감, 내가 하나 되기 위한 40년'
하종현 화백, '마대, 물감, 내가 하나 되기 위한 40년'
  • 왕진오
  • 승인 2017.12.31 1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트인포=왕진오 기자] "마대, 물감, 내가 합일을 이루기 위해 40년 동안 붓을 놓지 않았지요, 지금은 죽어도 원이 없지요. 하도 수행하듯 작업을 해서 사리가 많이 나올 것 같아 "라며 크게 웃는 단색화 인기에 몸값이 천정부지 뛰어오른 하종현(80) 화백. 그가 '접합' 연작에 이은 연기로 그을린 신작을 선보이는 자리를  삼청로 국제갤러리 1관과 2관에서 2015년 9월 17일∼10월 18일 마련했다.

'국제갤러리 개인전 작품과 함께한 하종현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국제갤러리 개인전 작품과 함께한 하종현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하종현 화백은 70년대부터 마대로 만든 캔버스의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기존 미술계 상식을 뒤집었다. 그는 단색화 태동기부터 화면의 앞뒤를 구분하는 관행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는 기법이자 색채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연기(smoke)'를 선택했다. 물감에 연기를 실어서 캔버스에 씌우면 표면에 연기가 자연스럽게 부착된다.

하종현 화백은 물감이 캔버스에 어떤 방식으로 발리는가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한다. 2년 전부터 70년대 실험했던 주제인 연기를 사용한 작품을 완성하게 됐다고 한다.

하종현, 'Conjuction 14-5'. 73×92cm, Oil on hemp cloth, 2014.(사진=국제갤러리)
하종현, 'Conjuction 14-5'. 73×92cm, Oil on hemp cloth, 2014.(사진=국제갤러리)

뒤에서 밀어내어 결을 파괴하며 진행했던 붓질로 완성된 표면에 연기가 덮이게 되는 순간, 물감이 마르기전에 그 입자들이 새로운 레이어를 쌓게 된다는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레이어는 바람에 의한 건조과정을 통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되는 신기원을 이뤘다고 전한다. 마대를 이용한 것도 서양의 것을 사용하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하종현 화백은 "캔버스도 물감도 붓까지도 서양의 화풍을 닮았다는 이야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찾은 재료가 마대 였습니다. 엉뚱한 재료를 쓰면서 물감부터 붓까지 직접 만들어 사용한 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종현, 'Conjuction 04-3'. 194×260cm, Oil on hemp cloth, 2004.(사진=국제갤러리)
하종현, 'Conjuction 04-3'. 194×260cm, Oil on hemp cloth, 2004.(사진=국제갤러리)

이어 "사용하고 있는 흙과 같은 재료는 변하지 않습니다. 예술가가 자기의 작품을 설득하면서 세상에 보이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각자가 생각한대로 작품에 대한 감상을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고 설명했다.

하종현이 추구하는 색의 경향 역시 자연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그가 캔버스에 올리는 흙색이나 검정색은 단순히 검은 톤의 색채가 아니라 어두워진 톤, 곧 기와가 오랫동안 비를 맞고 세월이 지나 토색된 것과 같은 색채이다. 마치 한국의 도자기에서 느낄 수 있는 친숙한 색채로 어디에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은 색상이 나오게 된다.

물질로서의 단색화의 철학 속에서 시각적인 색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물질일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작품은 물질과 물감이 행위와 섞여 덩어리로 만들어지는 종합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하종현, 'Conjuction 15-04'. 194×259cm,  Oil on hemp cloth, 2015.(사진=국제갤러리)
하종현, 'Conjuction 15-04'. 194×259cm, Oil on hemp cloth, 2015.(사진=국제갤러리)

평생에 걸쳐 유화를 주로 다루었으며, 물감을 물질로서 캔버스의 뒷면에서 밀어 넣는 그만의 고유한 기법은 한국 현대사의 정치·사회적 질곡과 급격한 산업화 아래서 억눌려야 했던 내면의 고통과 울분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종현 화백은 1959년 홍익대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1990년∼1994년 홍익대학교 예술대학의 학장을 지냈고, 2001년∼2006년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했다.

작가는 2002년 부산시립미술관, 2003년 밀라노의 무디마 파운데이션 현대미술관, 2004년 경남도립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고,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회고전과 2014년 뉴욕 소재 블럼 앤 포 갤러리에서 전시를 펼쳤다.

주요 소장처로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홍콩 M+ 시각예술 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