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보물창고-⑮] 이건희 소유 국보 제219호 '청화백자매죽문호'
[삼성가 보물창고-⑮] 이건희 소유 국보 제219호 '청화백자매죽문호'
  • 왕진오
  • 승인 2018.01.0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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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다녀온 이건희 국보… 조선 초 미학의 극미 보여줘'

[아트인포=왕진오 기자] 태평양을 다녀온 삼성가 국보가 있다. 1991년 10월, 콜럼버스 미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 출품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건국 620주년이나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대한민국 국보 전시’가 없다 보니, 대한민국의 국보가 대한민국의 국민들보다 외국인들이 먼저다.

국보 제219호 '청화백자매죽문호'.(사진=문화재청)
국보 제219호 '청화백자매죽문호'.(사진=문화재청)

태평양을 다녀온 삼성가 국보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14년이나 지난 2014년 작년 7월 2일∼9월 13일 리움미술관이 주최한 ‘세밀가귀: 한국미술의 품격’전이다.

태평양을 다녀온 삼성가 국보는 이건희 삼성회장 소유의 ‘청화백자매죽문호’이다. 1984년 8월 6일 국보 제219호로 지정된 후 삼성미술관 리움이 관리하고 있다. 이 국보가 태평양을 건널 때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했는지의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청화백자매죽문호’에 대해 흥미로운 일화가 소개됐다. 이종선 전 삼성미술관 호암미술관 부관장이 최근 출간한 ‘리 컬렉션’이란 책이다.

이 부관장은 책에서 “(청화백자매죽문호) 국보로 지정된 청화백자가 이건희 회장의 수중에 들어올 당시 전문가들도 확단을 못했다”면서 “일부에서는 가짜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1967년 종로구 관철동 부근의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비슷한 모양의 백자 어깨부분 파편이 출토”됐다는 것이 이유다. 충격적인 것은 “이 항아리(이건희 회장 소유 국보인 청화백자)마저 도굴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기까지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이 부관장은 “사건의 추이와는 관계없이 이 항아리의 진위문제는 그렇게 결론이 났다”고 꼬집고 있다.

이 부관장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값을 따지지 않고 별로 묻지도 않는다” “좋다는 전문가의 확인만 있으면 별말 없이 결론을 내고 구입했다.” “조선 초 청화백자에 남다른 관심” 을 가졌다는 이유다.

‘청화백자매죽문호’는 크고 힘차게 생긴 조선초기의 전형적인 청화백자이다. 높이 41cm, 아가리 지름 15.7cm, 밑 지름 18.2cm의 청화백자 항아리다. 몸통 윗부분은 볼록하고, 아랫부분은 잘록하게 좁아졌다가 살짝 벌어진 형태미를 가졌다.

아가리 맨 위쪽에 두 줄의 가로선이 있고, 그 아래에 꽃무늬와 이중의 원무늬를 번갈아 휘돌아 감은 다음 아래쪽으로 다시 한 줄의 가로선을 둘러 선미학(線美學)의 극미(極美)를 은영자중하고 있다.

어깨 부위에는 장식적이면서 화려한 연꽃무늬가 있고, 굽 바로 위쪽에도 같은 문양을 배치하였다. 중심 문양으로는 매화와 대나무가 몸통 전체에 그려졌는데, 가지가 교차하는 매화와 그 사이사이의 대나무 표현이 세밀하며 뛰어나다. 특히 윤곽선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칠하는 구륵전채법(鉤勒塡彩法, 겉을 뜨고 속을 색으로 채우다)이 돋보인다.

이 백자는 문양의 표현 기법과 색, 형태면에서 아름다운 항아리이며, 구도와 소재면 에서 중국 명나라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15세기 중엽 초기에 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영원이 쓴 '조선시대 도자기(서울대학교출판부, 2003)에 따르면 "세련된 양식으로 보아 왕실에서 사용한 것이거나 왕실로부터 하사 받은 특수 계층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똑같은 예가 서울 관철동에서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흥미롭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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