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가 探究記 3 '사윤택 작가'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가 探究記 3 '사윤택 작가'
  • 권도균
  • 승인 2018.01.05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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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H]  '시간과 공간의 틈, 그 찰나의 순간을 쫓는 화가 사윤택의 간헐적 이야기'

​사윤택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물리학, 심리학 그리고 서양 철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의 숨겨진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집중력과 이해력을 요한다.

사윤택, '물(땀), 불, 바람, 공기'.(사진=아트스페이스H)
사윤택, '물(땀), 불, 바람, 공기'.(사진=아트스페이스H)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품의 이론적 베이스는 동양철학이란다. 다만 서양화를 전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양 이론을 차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비평가나 평론가들조차도 사윤택 작품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동양 철학자로서, 서양 철학이나 미학 이론에 근거한 글을 읽을 때는 뇌에 상당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개인적으로 관념론적이고, 분석적인 서양 철학이 무척 어렵다. 동양 철학은 직관적이고, 종합적이라서 체질에 맞는다. 철학과 학부 시절 데모 대신 공부만 해서, 학점이 꽤나 좋았지만, 독일 관념론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윤택 작가는 그림을 나름 잘 그린다. 그렇다면 이해하기 쉬운 주제를 선택해도 될 텐데, 왜 이렇게 쉽지 않은 주제를 선택했을까? 오만함이나 자신감 때문일까? 작가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특별함을 추구하려고 한다. 이런 유형의 작가들은 자존심이 무척 강한 편에 속한다. 사윤택 작품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품 감상과 더불어, 전시 제목과 작품명 이해하기, 작가 노트와 비평글 읽기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상당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분석보다는 직관에 근거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직관적으로 이해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하지만 분석적 사유에 의해 추론된 메시지를 표현하려는 사윤택의 작품은 이론적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작품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작가들을 만났기 때문에, 모든 작가를 언제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를 전부 기억할 수 없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작가의 기억을 끌어내기 위해서, 사윤택 작가에게 두 번 전화를 걸었다. 작품에 대해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싶었다.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충청도 출신 작가라서 그럴까? 때로는 무척 느린 느낌이다. 그래서 작가를 생각하면, 아부지, 돌 굴러가유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평소에도 작가와 통화하기 무척 힘들다. 전화를 하면, 바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자신의 휴대 전화 배터리가 방전되는 사실조차 잊기 일쑤다. 일상적인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로지 작업에 대한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사람 같다. 철학자 관점에서, 작업을 안 하고 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마침내 간신히 통화를 했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삽 십여분 남짓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예전에 배웠던 철학적 이론 하에서, 이제 비로소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작가와는 2018년 10월 3주간 개인전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전시라서, 박사 학위 취득 후에는 작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사뭇 기대가 된다.

작가를 알게 된지 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배우 공유같이 훤칠한 키, 무술과 운동으로 다져진 뱃살 없는 날씬한 몸매, 그리고 나름 잘생긴 외모를 자랑한다. 말에 충청도 억양이 담겨있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북촌 갤러리 시절, 작가가 북촌에 몇 달 머무를 때는 우연히 동네에서 여러 번 마주쳐서,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꽤 있었다.

2012년 7월 북촌 갤러리에서 사윤택과 황지윤 2인 전을 열었다. 작품을 뚫어지게 보아도 이해가 잘 안돼서, 2013년 8월에는 개인전으로 초대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사윤택 작품을 지금만큼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 후, 작가가 박사 논문을 준비하느라 바빠지면서, 만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갔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2016년 여름, 국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그 후에는 OCI 미술관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가 되었다.

2017년 다른 이유로 성북동 갤러리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윤택 작가 이야기를 쓰고 싶으니, 박사 논문과 도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박사 논문을 펼쳐보니, 논문 첫 페이지 빈 공간에 작가가 삐뚤빼뚤 손글씨로 쓴 짧은 글이 보인다.

항상 권 대표님이 간헐적으로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간헐적으로 뵈올 때마다, 변함없는 모습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논문을 쓸 당시엔 치열했으나, 지금 다시 보니 논문은 미술사 중심적이고, 예술철학 중심적이라, 너무 현학적인 것 같아 후회가 됩니다. 재미있게 쓸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건강하십시오. 사윤택 올림.

누군가에게 이러한 감사의 편지를 받았을 때, 존재의 의미와 삶의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작가에게 좀 더 잘해줄 걸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변함없는이라는 익숙한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만난 런던대 후배들이 내게 자주 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짤막한 편지에 등장하는 간헐적이라는 단어는 최근 작가의 화두다. 2013년 전시 제목인 메멘토 모멘트(memento moment)라는 단어는 2017년 경기 창작 센터 전시에서 간헐적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있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 공유는 시간과 공간의 틈을 이용해서, 시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작가는 캔버스에 오로지 정지된 그림만으로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동영상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평면회화로서 전달하려고 한다.

영화에서 모션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려면, 기본적으로 1초에 24 프레임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24 프레임의 느낌을 캔버스 화면에 재현하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여기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의 상상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작가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시간의 순간과 공간 속 행위의 운동성을 하나의 프레임, 즉 정지 화면 속에서 보여주려고 의도한다. 따라서 움직임이 쉽게 연상되도록 공을 사용하는 스포츠를 주 소재로 사용한다. 작가가 그리는 탁구, 테니스, 골프 그림에서 공의 움직임이 바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하나의 열쇠다.

작가가 보내준 2018년 1월 OCI 미술관 그룹전 도록에서 보이는 위에 올린 최근 작품을 분석해보자. 그림 속에는 탁구를 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탁구공은 네 개가 보인다. 그중 두 개의 공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공의 궤적의 흰색 선을 드러낸다. 두 사람의 모습은 역동적이고,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은 움직이는 듯 표현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과 찰나의 순간이 하나의 프레임 속에 기록되어 있다. 작품이 조금 어렵게 다가온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얻은 정보를 조합해서 나름대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었다. 작품 속에는 세 가지 시간의 흐름이 숨겨져 있다. 첫 번째 시간은 물리적 시간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시간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수 십 개의 프레임을 하나의 화면에 담기 위해서 동작의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두 번째 시간은 의식적 시간이다. 작가는 물리적 시간의 변화도 넘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4차원의 세계, 이것을 작가는 순간의 틈이라고 부른다. 간헐적으로 만나는 순간들 속에서, 관찰자로서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의 도입이다. 이것을 인식 속에서 일어나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24시간 조리개를 노출하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동일한 풍경을 24시간 보고 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사윤택 작가는 24시간 동안 풍경을 쉼 없이 응시하는 대신, 딴짓을 하기도 하고, 졸기도 하다가 인식되는 순간순간의 찰나를 작가의 주관적 인식 속에서 하나로 통합시키는 작업을 한다. 작가의 의식 속에서 느껴지는 시간과 동작의 흐름을 캔버스에 기록하는 것이다.

세 번째 시간은 관념적 시간이다. 이미 물리적 시간 속에서 일어난 운동성과 인식론적 시간에서 느끼는 운동성을 캔버스에 기록한 후, 간헐적으로 느끼는 상상의 시간에서 벌어진 가상의 운동성을 추가한다.

관념적 시간은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비현실적 시간 속에 존재하는 운동성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조금은 혼란스럽다. 작품을 그리는데, 세 종류의 시간과 공간의 운동성이 결합되어 있으니 말이다.

인도 철학에서 인용되는 비유가 있다.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밤에 짚으로 만든 새끼줄을 뱀이라고 오인하였다. 이 사람은 뱀을 보고 놀랐던 마음을 밤새도록 진정시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날이 밝은 다음날 비로소 자신이 본 것이 새끼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마음이 진정되었을 것이다. 이 사람의 인식 속에서 그것은 뱀일까? 아니면 새끼줄일까? 인식론적으로는 뱀이었고, 실재론적으로는 새끼줄인 것이다.

원효대사도 간밤에 너무 맛있게 마셨던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다음날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 순간 이후 세상을 보는 다른 차원의 인식의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은 초월적이다. 여기에 상상력까지 결합시킨다면, 과거로의 추억여행이나 미래로의 상상여행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 경험에 의해서 느끼는 뇌의 쾌감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가상적인 세계에서 느끼는 쾌감의 강도가 별 차이 없는 것은 아닐까? 사윤택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함께하는, 끝없는 시간과 공간으로의 그림 여행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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