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컴퍼니 2] SK그룹, 디지털 미디어 중심의 전문 전시관 ‘아트센터 나비’
[아트&컴퍼니 2] SK그룹, 디지털 미디어 중심의 전문 전시관 ‘아트센터 나비’
  • 왕진오
  • 승인 2018.01.0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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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미래 미술관을 꿈꾸다, 디지털의 등장과 디지털 미술관의 구축'

아트센터 나비가 세상에 날개짓을 펼치며 다양한 미디어 전시 활동을 전개한 지 10년이 되는 시점에 노소영 관장은 지난 10년에 대해 술회를 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사진=왕진오 기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사진=왕진오 기자)

"1997년 워커힐 미술관을 이어 받아 이를 새로운 미술관으로 바꿀 궁리를 시작하였다. 왜 새로운 미술관인가? 우선 디지털의 영향이 컸다. 디지털 혁명과 인터넷의 확산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를 사용하는 방식도, 소통하는 방식도 그리고 축적하는 방식이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기술에 대해서도 문화 예술에 대해서도 깊은 식견이 없던 자신과 같은 사람이 보아도 디지털은 의미심장했다. 문명사적 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는 듯 한 예감이 들었다" 며 새로운 미술관을 구상한 또 하나의 이유는 보다 현실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중소 미술관으로서의 생존전략이었다.

당시 굵직굵직한 국내 기업미술관들은 너도나도 현대 미술에 투자하고 있었다. 비록 워커힐 미술관이 국내 최고의 사설 현대미술관으로 출발해 선구적인 전시와 작업들을 선보였지만, 다른 미술관들과의 투자 규모와 비교할 때 턱도 없이 작은 운영자금이었다.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순전히 사재를 털어 운영해 왔던 고 박계희 여사의 깔끔한 성품 탓이었다.

종로 SK사옥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 입구.(사진=왕진오 기자)
종로 SK사옥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 입구.(사진=왕진오 기자)

그러나 더 이상 기업의 후원 없이 미술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마침 정보통신업에 진출한 SK 최태원 회장이 지원의사를 밝혔다. 최 회장은 이 새로운 미디어가 사용자의 인지와 감성을 어떻게 변화 시킬지에 관심이 있었다.

예술가들의 예민한 촉각으로 이를 탐구해 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것은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합리적인 투자라 여긴 듯하다. 반면, 디지털 예술이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 대중의 호응을 얻기엔 디지털 아트가 너무 첨단의 장르였던 것이다.

'생소한 예술장르 그 뿌리 내리기'

노 관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과학기술과 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소위 통섭을 도하는 모임을 2000년 6월에 발족했다. 그동안 각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 활동을 하던 전문인 29명이었다.

MIT 미디어랩의 최연소 박사학위 소지자인 윤송이 박사도 이 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첨단이 학문적 예술적 성취가 그거 몇몇 뜻있는 사람들의 소망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안 이후 전문 모임에서 아마추어 그룹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소통이 절반 이상의 의미를 차지하는 미디어아트에서 관객과 코드를 맞추지 못함이 당시 미디어 아트가 가진 문제점의 하나였다. 아무리 훌륭한 미디어아트를 갖다 놓아도 관객이 그 의미를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 과 같은 맥락이었다.

'2007년 서울역 역사에서 진행됐던P.Art.y'.(사진=왕진오 기자)
'2007년 서울역 역사에서 진행됐던P.Art.y'.(사진=왕진오 기자)

2000년 서울시가 대규모 예산을 들여 야심차게 내놓은 '미디어시티-서울페스티벌'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유명 큐레이터를 동원해 동네가 떠들썩한 전시였으나 ,관객의 반응은 냉담했다. 서양 미술사의 좁은 맥락에서 해석한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관객에 대한 배려 없이 쭉 늘어놓았다. 미디어아트를 즐길 수도 배울 수도 없었던 축제였다.

제1회 '미디어시티-서울페스티벌' 전시는 아트센터 나비에게 새로운 의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세계적 예술의 조류라고 해서 해외의 것을 무조건 수입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세상을 향한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없다면, 굳이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미술관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소통의 예술인 미디어아트에서는 사회 문화적 맥락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들도 많아서, 어디에서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시연되는가에 따라 작품의 내용과 의미가 달라진다. 이러한 맥락 의존적인 경향은 미디어아트가 전통 예술과 구별되는 특성이며, 작가들은 이 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관객과 눈을 맞추지 못했던 초기 작업들 이후, 나비는 좀 더 적극적으로 관객과의 소통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나비 활동의 주 관객층인 한국의 2030 소위 N-세대에 주목하면서 부터이다.

인터넷 N-세대의 중추를 이루는 한국의 2030세대는 복잡하거나 난해한 사안들은 기피한다. 지적인 아이러니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은 단순하면서 즉각적인 메시지, 가슴으로 통하며 공유할 수 있는 것,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 그리고 다 함께 거국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산뜻하고 강렬한 카타르시스에 열광한다.

'2007년 P.Art.y 공연 모습'. (사진=왕진오 기자)
'2007년 P.Art.y 공연 모습'. (사진=왕진오 기자)

'디지털 아트와 산업과의 연계- 유비쿼터스 예술'

나비는 미디어아트와 공연을 접목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디지털 미디어와 무용, 영화, 고전음악, 게임 등 여러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한 작업들을 소개했고, '언집핑 코드(Unzipping CODE)'와 같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디제인/브이제잉(Djing/Vjing)'을 하는 작업들도 선보였다. 단지 기존의 공연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하여 그것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기대하게 했다.

전통적인 공연장은 갇힌 공간이다. 물론 상상의 날개는 끝없이 펼 수 있겠지만 물리적인 환경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제 새로운 극장에서는 그 벽들이 스크린으로 작동해 세상 여러 곳과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을 통해 남극 기지의 대원도, 히말라야의 고승도 심지어 우주인도 실시간으로 불러내어 극중 인물로 등장시킬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게임으로 공연의 형태를 가져가는 것이다. 게임만큼이나 우리를 집중시킬 수 있는 장르는 없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장에 가면 금방 알 수 있다. 축구나 야구, 농구 등의 스포츠 경기야말로 인간의 희. 로. 애. 록이 고농도로 농축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혀 새로운 개념의 공연을 만들려는 나비의 노력은 아직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함께 만들 사람을 아직 찾지 못한 이유라 한다. 대신 그간의 아이디어를 모하 2007년에 'P. Art. y'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예술과 기술(People, Art and Technology)의 축제인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서울역의 프리 이벤트와 남산 드라마 센터의 2박 3일간의 여정동안 20여 개의 크고 작은 공연들을 선보였다. 당시 관람객 집계 결과 3,500명 정도가 참가한 이 행사에는 작가나 디자이너, 혹은 마켓터나 기획자등 창의 산업 종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한민국 서울의 크리에이티브 피플 중 특히 디지털 미디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04년 10월 오픈 후 두 달 만에 약 10만이 넘는 방문객, 그리고 1,000여 명의 상시 방문객들의 북마크가 생성되었다. 이를 토대로 아트센터 나비가 모바일 폰에 갤러리를 개설한 '엠 갤러리' 도 2004년에 시작하였다.

또한, 2004년 국내 최초로 건축물과 조화를 이룬 LED 전광판 갤러리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 SKT 을지로 사옥에 설치한 이 전광판은 약 7미터 높이의 위치에서 폭 1미터 길이 53미터 건물을 한 바퀴 돌아가고, 로비 안으로까지 연결되어 있다.

마치 가늘고 긴 띠처럼 생긴 LED 화면이 건물의 내 외부를 연결해 영상 예술을 보여주게 된다. 과도한 빛을 발하지 않으면서 인도를 걷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고, 사운드로 함께 들을 수 있어 복잡한 도심에 청량한 감흥을 주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는 열린 기업이 되고자 하는 SK의 경영 이념을 반영한 ‘COMO’라는 이름의 전광판 갤러리는 대기업이 사회와 예술로 소통하는 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6년간 총 300여 개의 작품이 ‘COMO’에 전시됐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K그룹의 아트센터 나비는 지난 10년 동안 순수 미술이 아닌 디지털 아트에 대한 차분하고 지속적인 행동을 통해 이제는 국내 최고의 미디어아트 전문 전시 공간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2007년 P.Art.y 공연 모습'. (사진=왕진오 기자)
'2007년 P.Art.y 공연 모습'. (사진=왕진오 기자)

여느 기업 미술관들에 비하여 모 기업에서의 지원이 일천한 까닭에 기업 이미지 부합되며 자생적인 예술 장르를 선택하였고, 특화된 예술을 기반으로 국내와 해외에서의 지명도를 올리고 있는 운영에 대해서는 다른 재벌 미술관들이 참고로 하여도 좋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년간 아트센터 나비에 대해 노소영 관장은 “미디어아트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예술이 아니었다. 라며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작업들을 쏟아내고, 그 다양성과 참신함에도 진력이 날 지경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수고와 노력이 무엇을 향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아졌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 기술을 위한 예술, 예술을 위한 기술? 미디어아트 장르는 아직 어려서 사유나 사색의 깊이가 보이지 않았다. ‘반짝 기술’ 이나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이목을 잠시 끌다가 사라지는 작품들이 대다수 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 12월에 개관한 미디어 아트 전문기관 아트센터 나비는 새로운 기술 환경에 따른 문화적 욕구를 생명력 있는 활동으로 이끌어내는 매개자의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10년의 고민과 탐색의 시간을 날개 짓 삼아 예술과 기술, 사회를 잇는 미래의 오픈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아트센터 나비는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빌딩 4층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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