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가 관객에게 던진 수수께끼 ‘코끼리를 쏘다 상(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양혜규가 관객에게 던진 수수께끼 ‘코끼리를 쏘다 상(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 왕진오
  • 승인 2018.01.1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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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삼성미술관 리움이 2015년 첫 번째로 선택한 전시로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설치예술가 양혜규(44)의 '코끼리를 쏘다 상(象) 코끼리를 생각하다'가 2월 12일부터 한남동 리움미술관 전관에서 진행된다.

양혜규 작가.(사진=리움미술관)
양혜규 작가.(사진=리움미술관)

리움이 2004년 개관 이후 생존 한국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펼친 것은 2012년 서도호 전에 이어 두 번째 이다. 리움이 양혜규를 전시자로 선택한 것은 서도호(53)이후 한국 작가로는 세계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미술관측은 밝혔다.

양혜규가 한국에서 5년 만에 선보인 '코끼리를 쏘다 상(象) 코끼리를 생각하다'전에는 2001년 이후 발표한 대표작들부터 새로운 작업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작까지 35점의 작품들로 이뤄졌다. 하지만 전시장 어디에도 코끼리를 떠올리는 작품은 찾을 수 없다.

'코끼리'는 양혜규에게 자연과 인간의 존엄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코끼리라는 소재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와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1914∼1980)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서 가져왔다고 전한다.

리움미술관 양혜규 개인전 설치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리움미술관 양혜규 개인전 설치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전시장 입구 공중에 설치된 블라인드 설치작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는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솔 르윗의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1986)을 23배로 확장한 작품이다.

리움미술관 지하 1층 그라운드 전시장에 펼쳐놓은 작품들은 마치 민속촌에 온 듯 짚풀로 만들어 놓은 알듯 모를 듯 한 형상의 조형물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양혜규가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외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중간 유형'이다. 토속적이며 오랜 기간 전해 내려온 짚풀이 갖는 인류학적 보편성과 민족적 개별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담은 작품이다.

'중간 유형'은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 인도네시아의 불교 유적 '보로부드로', '피어나는 튤립'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을 참조한 구조물 3점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수직적인 개별 조각 6점으로 구성됐다.

중간 유형(삼족 광주리 토템) 설치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중간 유형(삼족 광주리 토템) 설치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일본 가나자와의 한 공원에서 짚풀로 나무 전체를 감싼 모습을 보고 조형적인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짚풀에서 문화인류학적 맥락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인공 짚풀은 원시와 토속 그리고 자연이라는 콘셉트와는 사뭇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은 토속적이며 오랜 기간 전해 내려온 짚이 갖는 인류학적 보편성과 민족적 개별성에 대한 양혜규의 관심을 담은 작품이라고 전해졌다.
이들 작품들 사이에 마치 화물로 어디론가 부쳐지기 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창고 피스'작품이 눈길을 모은다. 맥주 박스와 여러 개의 종이 박스를 대충 쌓아놓은 것 같은 이 작품은 23점에 달하는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미술품 운송 업체가 포장한 상태 그대로 네 개의 운반용 나무 팔레트 위에 놓여있다.

지난 2004년 영국에서 첫 선을 보인 '창고 피스'는 이후 여러 도시에서 전시되었지만, 팔리지 않고 그대로 작가에게 또 다른 짐이 된 것이다.

양 작가는 "작품을 만들면 제고가 된다. 바로 작가에게 짐이 되는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만든 이 '창고 피스'가 더욱 큰 짐으로 다가왔다"며 "안 팔린 재고가 쌓여있을 때 절박함이 강하게 느껴졌다"며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리움미술관 양혜규 개인전 설치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리움미술관 양혜규 개인전 설치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이 작품은 독특하고 유별난 작품만 수집하는 독일의 한 컬렉터에게 팔렸고, 이를 계기로 양혜규는 작품이 상품으로서 재화의 역할을 하게 됨으로 경험하게 됐다. 창작적 재구성, 전시 관행, 미술품 보관과 판매 등 예술 작품의 다층적 현실을 함축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은 전시장 바닥에 널려져 있는 의자들과 책상으로 만들어진 'VIP 학생회' 작품을 봤을 때 절정에 다다른다. 무슨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행위에 대해 관람객들은 퍼즐을 풀기보다 어려운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양혜규는 "내가 하는 일은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싶고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다. 나에 대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며 "그 궁금증 해소를 바탕으로 살갑게 이해하고 진정한 호기심으로 앞으로 나의 활동을 봐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전시를 열면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놔도 되는지 모르겠다. 만용이라면 만용이고 용기라면 용기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고, 앞으로 추적해보고 싶은 주제였기에 시작해봤다"고 전시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양혜규 작가의 작품 설명을 듣고 있는 취재진들.(사진=왕진오 기자)
양혜규 작가의 작품 설명을 듣고 있는 취재진들.(사진=왕진오 기자)

※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양혜규는 2006년 자신의 첫 국내 개인전을 인천의 한 폐가에서 열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본 전시에 참가하며 공감각적인 블라인드 작업과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의 호평을 받았다.

2010년 서울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갖은 이후 뉴욕 뉴뮤지엄(2010),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미술관(2011), 영국 테이트모던 '더 탱크'갤러리(2012),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2013)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독일 카셀 도큐멘타(2012)에 참여했다.

2007년 세계적인 젊은 작가에게 주는 아트바젤 '발루아즈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독일 카피탈 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미디어 설치작가'에 한국의 이불(51) 작가와 함께 포함됐다. 2014년에는 아트팩트넷이 선정한 '세계 300위 이내 작가'에 故백남준(1932∼2006), 김수자(58) 작가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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