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예술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
  • 권도균
  • 승인 2018.01.30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 H] 역사 문헌에 의하면,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 시대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다. 여성의 정치 사회적 참여만 제외하고, 여성의 지위가 존중받았다고 한다.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코엑스에서 진행된 2회 서울 국제예술박람회 현장'.(사진=왕진오 기자)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코엑스에서 진행된 2회 서울 국제예술박람회 현장'.(사진=왕진오 기자)

고려 시대는 귀족 중심 사회였지만, 평민들도 무척 세련되고 자유로운 사회였을 것 같다. 고려 시대의 예술 작품은 귀족들을 위한 장신구나 생활 도예가 주가 되는 공예 중심이었을 것이고, 불교 국가답게 불교 예술 작품도 많이 제작되었을 것이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조선은 유교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차용한다. 고려 시대의 유교가 정치 시스템만을 위해서 사용되었다면, 조선시대 유교는 백성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세상을 열었으니, 새로운 통치 이념과 엄격한 도덕관을 주입했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유교는 더 이상 공자나 맹자가 주창한 인간의 따뜻한 마음씨를 발현시키는 인본주의 유학이 아니었다.

​푸른빛을 좋아했던 고려 시대의 화려한 청자와 금선으로 그린 우아한 불화는 순백색의 백자와 수묵화로 바뀌었다. 고려 시대의 푸른빛은 조선 시대에 순백색으로 바뀐 것이다.

조선의 정치적 모토는 도덕적이고 청빈한 삶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변화가 없었고, 도덕적 이데올로기는 남성 우월주의를 만들어 버렸다. 결국 조선 시대의 사람들은 도덕관념에 속박 받는 삶을 살게 되었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시작된 양반 수의 증가는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킨다. 부자의 증가는 양반 수의 증가를 의미한다. 양반이 되는 순간, 양반의 티를 내야 한다. 족보를 만들고, 가문을 새롭게 만든다. 이때부터 한국인들의 심성은 눈치 보기, 따라 하기, 과시하기, 출세하기 등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관념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조선 시대의 예술 작품은 불화가 퇴조하면서, 수묵화, 산수화, 문인화, 서예가 주목을 받는다. 공예품도 다각적으로 발전한다.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수요가 꽤 많았을 것 같다. 손님을 집에 불러 파티를 했던 시대이니만큼, 자기 과시를 위해서라도 값비싼 예술 작품을 많이 구입했을 것 같다.

따라 하기와 눈치 보기라는 한국인의 습성은 요즘에는 트렌드라는 영어 단어로 바뀐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트렌드의 변화에 민감한 민족도 없는 듯하다.

거주 문화의 트렌드는 아파트, 자동차는 독일차, 스마트폰은 아이폰이나 갤럭시, 음식문화는 맛집 탐방, 운동은 골프와 등산, 취미는 해외여행 등. 트렌드가 너무 자주 너무 빨리 변화해서, 앞으로의 트렌드는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예술 작품이 아주 잠깐 트렌드였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2007년이었다. 줄을 서서 그림을 사던 시절이었다. 왜 이 당시에는 이렇게 그림 사기 열풍이 불었던 것일까? 예술 작품을 투자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남들 따라 하기의 결과물이었을까? 나도 그림을 사러 돌아다녔던 시절이었다. 예술 작품 구입의 열풍이 언제 다시 불지, 아니면 지금처럼 침체 상태로 계속 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예술을 대하는 인식의 변화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예술 작품을 판매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나 절망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마치 보험 외판원이나 화장품 판매원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억지로 강매하는 느낌말이다. 조선 시대와 달리 어른들의 놀잇감이나 장난감이 무척 많아졌다. 값비싼 예술 작품이 없어도, 사는데나 행복해지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한국인들에게 예술 작품은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파트는 거주하는 곳이면서, 재산 증식이나 투자 대상도 된다. 아직도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이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하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 아무도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와 과시를 위해서 사는 소모품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자동차는 구입과 동시에 값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급 외제차 구입에 돈을 쓰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동산과 더불어 투자 물건으로 주식이나 펀드가 있다. 잘못 산 주식이나 펀드로 돈을 잃어도 스스로를 탓하며 쉽게 체념한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명품 가방을 사고, 골프를 치고, 양주를 마시고, 해외여행을 하고, 한우를 먹어도 아깝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순간의 행복이 삶의 기쁨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에게 예술 작품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부동산과 같은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 대상일까? 고급 승용차 같은 소모품일까? 예술 작품도 골프나 해외여행, 또는 양주나 값비싼 음식처럼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물건일까?

예술 작품도 인간이 만든 물건이라서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신기한 점은 다른 물건들과 달리 예술 작품은 싫증 나면 눈앞에서 치우고 리세일을 원하게 된다.

예술 작품은 소모품이 아니고, 투자 대상이라는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리세일 시스템이 불완전하다. 옥션이라는 매매 창구가 있긴 하지만, 주로 고가의 미술품이나 자기 화랑의 작품들만 주로 거래하는 일부 메이저 갤러리들의 리그일 뿐이다.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회 서울국제예술박람회 현장.(사진=왕진오 기자)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회 서울국제예술박람회 현장.(사진=왕진오 기자)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 작품에 대해서 어떠한 인식을 가져야 할까? 예술 작품을 거래하다 보면, 남들이 사는 작품을 팔기는 상대적으로 무척 쉽다. 물론 남들이 사는 작품이 실제로 좋거나, 좋아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고가의 작품을 구입할 때, 대다수의 안목을 믿는 편이 안전하기도 하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여러 목적 중 하나는 나만의 독점적인 소유욕에 있다. 남들 따라 하기가 아니라, 나만의 행복을 위한 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을 행복을 주는 소모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일까? 투자와 결부를 시키다 보면, 행복하지 않은 작품도 구입하게 될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열풍이 불었던 단색화를, 70~80년대 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단색화의 가치를 왜 몰라보았던 것일까?

단색화의 미적 가치를 이해하는 수준이라면, 한국 컬렉터들의 안목은 대단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다. 그런데 혹시 단색화 열풍이 따라 하기 심리를 노린 메이저 화랑들이나 큰 손 컬렉터들이 만든 투기는 아닐까?

조선 시대의 영향인지 몰라도, 현재의 한국인들은 주체적인 나의 삶을 사는 것인지, 남들과 비교하면서 타인의 눈치를 보는 삶을 사는 것인지 헷갈려 하는 듯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행복을 위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예술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바뀌면 좋을 듯하다. 예술 작품을 행복을 주는 소모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작품을 파는 갤러리스트들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으니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