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권도균
  • 승인 2018.02.06 13: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 H]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부검을 통해서 사인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첨단 과학과 의료 기술을 통해서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낸다는 것이 신기하다.

'2017년 아트부산 당시 강형구 작가의 문재인 초상'.(사진=왕진오 기자)
'2017년 아트부산 당시 강형구 작가의 문재인 초상'.(사진=왕진오 기자)

그림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림에는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때때로 그림 속 인물이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신기할 따름이다. 따라서 작가가 영혼 없이 그리거나, 땀, 노력, 열정 없이 쉽게 기교만으로 그린 그림은 그냥 예쁘게만 읽힌다.

​그림 장사를 10년쯤 하다 보니, 그림에서 작가의 내면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림에는 작가의 성격, 생각, 느낌, 스타일 등,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러한 사실을 어린 작가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림은 시각언어이기 때문에, 그림 속에는 당연히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다. 색감만 보아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작가의 기분 상태를 감지해볼 수 있다.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왜 그렸고, 무엇을 생각하면서 그렸는지 추리해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최근에 어린 또는 젊은 작가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어린 작가들의 작품을 대하면, 첫 느낌이 앞으로 험난한 과정이 눈앞에 펼쳐지겠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20, 30대 작가들의 작품과 40대 중반 이후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그 깊이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최소 십 년 동안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없이, 좋은 작가가 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설령 운 좋게 유명해졌더라도, 내공이 부족해서 작가 수명이 길지 못하게 된다. 인내가 필요한데, 조급해져서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가끔은 어린 작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생각 좀 하고 그리면 좋겠다고. 붓 가는 대로 아무거나 막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물론 수 백, 수 천년 동안 그릴 수 있는 모든 주제와 소재는 이미 선배 작가들이 죄다 그려버렸다. 그래서 어린 작가들의 고민도 깊을 것이다. 분명 나의 주체적인 생각인데, 이미 누군가가 써버렸다면, 억울하게도 모방자가 되어버린다.

​어떤 주제로 그릴 것인지, 그리고 어떤 소재를 그릴지 천천히 시간을 갖고, 고민하면 좋을 듯하다. 그림 좀 그린다고 아무 소재를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면, 관람자의 시선을 오랫동안 잡아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사 논문을 썼던 몇 년간 나의 생각은 온통 박사 논문뿐이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논문을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하루 종일 매일매일 어떤 것만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오른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찾기 쉽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작가의 혼이 담긴 느낌이다. 좋은 작품을 보면, 단 몇 초안에 작품이 내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느낌에 이끌리게 된다. 이런 느낌이 예술 작품이 주는 독특함일 것이다. 느낌 있는 작품을 그리려면, 오로지 작품 생각만 해야 한다.

​마침 어제 만난 작가도 나와 생각이 같아서 좋았다. 살기 위해서 부업을 하고, 시간이 나면 작품을 그리고, 일하면서도 온통 작품만 생각하다 보니, 연애할 시간도 연애할 감정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 작가의 노력과 진심이 느껴져서 좋았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좋은 작가가 될 것이라고 격려하면서 내년 초대전 일정을 잡아주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부자는 안 되어도 좋으니, 평생 그림만 그리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나도 부자는 안 되어도 좋으니, 그림이 꾸준히 팔려서 평생 작가들을 후원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예술계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을 접하고 나면,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갤러리 경영이 힘들어도 버티는 것 같다.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갤러리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