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 박대성 "내가 유명해지면, 내 그림이 화법이 되겠죠"
소산 박대성 "내가 유명해지면, 내 그림이 화법이 되겠죠"
  • 왕진오
  • 승인 2018.02.0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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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내 지혜와 정신을 넣는데, 가장 밑받침이된 것이 바로 이가염이 말한 '글씨와 먹을 중요시하라'는 이야기였다. 글을 잘 쓰면 그림도 잘 그리게 되고 그림이 되면 글도 잘되는 서화동원이 가능하다."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소산 박대성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소산 박대성 화백'.(사진=왕진오 기자)

인고의 시간을 물과 그을음으로 응집된 먹을 갈아 화선지에 형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펼치고 있는 소산(小山) 박대성(73) 화백이 경주에 머물며 완성한 그림과 글씨 작품을 들고 6년여 만에 서울 나들이를 갖는다.

2월 7일부터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소산 박대성 개인전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를 통해서 50년 화업의 궤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박대성, '법의'.(사진=왕진오 기자)
박대성, '법의'.(사진=왕진오 기자)

전시를 앞둔 박 화백은 "지금까지 내 삶이 남다르다. 흔한 삶은 아닌 것 같았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시대의 아픔을 겪고, 그걸 나름대로 헤쳐나오면서 붓을 잡았는데, 73세가 된 지금도 후회를 해 본 적은 없다"며 "70이 넘은 후 내가 어디서 일생을 보내야 할 까라는 질문에서 선택한 곳이 경주였고, 지금도 그곳에서 자연과 인생의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대적 상황에서 수묵이 홀대받는 것에 대해서 박 화백은 "내가 수묵의 현대화를 위해 모델로 삼은 것은 바로 이가염이다. 그는 '글씨와 먹을 중요시 하라'고 하더라. 먹을 사용할 때 강한 먹을 사용한 것에 내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소품 위주여서, 나는 대작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대성, '금강화개'. 197x216cm, Ink on paper, 2018.(사진=가나아트)
박대성, '금강화개'. 197x216cm, Ink on paper, 2018.(사진=가나아트)

박 화백이 전시를 통해 세상에 전하는 주요한 이슈는 물상을 표현하는 선 자체가 힘찬 기를 내뿜게 되고 필획의 힘이 돋보이는 화면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느낌과 긴장감을 가지게 되는 데, 바로 이 조형성이 그가 찾은 한국화의 해답이다.

시(詩), 서(書), 화(畵)의 일치를 근간으로 하는 문인화적 사상과는 달리, 박대성은 '서'를 '글'이라기보다는 사물의 형태와 의미를 나타내는 '디자인'으로 접근한다.

박대성, '독도'. 설치모습, 218x800cm, Ink on paper, 2015.(사진=왕진오 기자)
박대성, '독도'. 설치모습, 218x800cm, Ink on paper, 2015.(사진=왕진오 기자)

따라서 그는 '서'의 '선'에 주목해 사물을 최대한 절제해 표현하는 반추상적인 표현방법을 작품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자연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한 화면에서 공간을 재구성하고 왜곡함으로써 성격이나 의미를 전달하고 사물의 본질을 찾는데 주력한 작업들을 볼 수 있다.

폭이 5미터에 이르는 대작들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긴장감과 힘찬 기운을 쏟아내는데 이는 크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운생동이 드러나는 현대적 수묵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3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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