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보물창고-㉑] 이건희 소유 보물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白磁 鐵畵梅竹文 立壺)'
[삼성가 보물창고-㉑] 이건희 소유 보물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白磁 鐵畵梅竹文 立壺)'
  • 왕진오
  • 승인 2018.02.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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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이건희 삼성 회장 소유의 보물 제1425호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白磁 鐵畵梅竹文 立壺)'는 2004년 11월 26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 제1425호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白磁 鐵畵梅竹文 立壺)'.(사진=문화재청)
보물 제1425호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白磁 鐵畵梅竹文 立壺)'.(사진=문화재청)

몸체 앞뒤에 매화와 대나무를 철화 안료로 그려서 장식한 조선 17세기의 백자 항아리이다. 구면부와 몸체 하단에 종속문이 시문되어 있고 몸체 전면에는 앞뒤로 매화와 대나무를 그려 넣었다.

유조는 17세기 특유의 옅은 회백색을 보이며 철화안료로 속도감 있게 그려진 회화적인 문양이 전면의 은은한 광택과 어우러져 한 폭의 문인화를 보는 것 같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조선시대 철화백자는 주로 17세기를 중심으로 제작됐는데, 이 시기 제작된 백자들은 원료 정제에 문제가 많아 표면이 회백색을 띠고 있다.

17세기는 조선에 있어 전란이 끊이지 않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인데, 당시 철화백자가 주로 제작되었던 것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연관을 가진다. 임진왜란 직후 조선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자연히 그릇의 제작 역시도 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또 명과 후금사이의 긴장관계로 청화안료의 수입 역시 거의 불가능해지자 신하들은 일부 깨진 청화용준을 바치거나 가화(假畵)를 사용하기도 했다.

철화백자의 생산 가마로는 1630년대 상림리 가마부터 송정리, 유사리, 신대리 등지로 17세기 가마 대부분에서 발견되었다. 문양은 간단한 초화문이나 당초문, 운룡문, 매화와 대나무, 국화, 기하하적 문양 등이 자주 보인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백자화매죽문호는 문인을 상징하는 매화와 대나무가 앞뒤로 표현되어 있고 구연부와 저부에는 간단한 종속문이 시문되어 있다.

매화는 잎은 윤곽선만 처리해 형식적으로 처리했고 가지는 굵게 채색했다. 하단에서 오른쪽 위, 왼쪽 위로 각각 뻗어나가는 두 대의 매화가지는 X자로 표현되어 있으며 그 외의 화면은 모두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보물 제1425호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白磁 鐵畵梅竹文 立壺)'.(사진=문화재청)
보물 제1425호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白磁 鐵畵梅竹文 立壺)'.(사진=문화재청)

후면의 대나무는 하나의 대에서 뻗어 나가고 있으며 잎은 세 갈래로 표현되었다. 역시 매화와 같이 거칠게 마무리했으며 이를 통해 사실적인 매죽의 표현보다는 상징성 표현에 무게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가지의 처리에서는 대담한 필치로 능숙함이 엿보이며 속도감과 생동감이 전해진다. 화풍 상으로는 17세기 후반의 허목, 김세록(金世祿, 1601∼1689), 이정(李霆, 1554∼1626) 등과의 유사성이 고려된다. 종속문에는 도식화된 삼각형 연잎을 그리고, 어깨에는 변형된 여의두문대를 배치해 넓은 문양대를 구획했다.

기형상으로는 이전 시기의 항아리에 비해 크기가 커지고 굽은 오목굽으로 바뀌었으며 몸체 곡선은 커다란 타원을 그리면서 중심부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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