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적 추상으로 풀어낸 단색화 원조, 서승원 ‘침정과 도전의 반세기’ 展
기하학적 추상으로 풀어낸 단색화 원조, 서승원 ‘침정과 도전의 반세기’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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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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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인포]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피안의 세계에서 오는 것을 발현 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 동시성이라고 본다."

한국 추상회화의 거목 서승원(77) 작가가 반세기 화업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동시성'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개념을 설명한 말이다.

'서울 삼청로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전시된 작품과 함께한 서승원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서울 삼청로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전시된 작품과 함께한 서승원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서울 삼청로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이 3월 8일부터 서승원 작가의 개인전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를 마련했다. 서 작가의 50여년 화업의 중추인 '동시성'시리즈를 중심으로 총 23점의 작품이 전관에 펼쳐진다.

특히 올해 들어 제작된 푸른색 계열의 최신작품과 함께, 한국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 회화 작품부터 작가의 1970~80년대 대표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서 작가는 한국에서 최초로 기하학적 추상화를 선보인 작가로 알려졌다. 그 시대를 일회성이 아닌, 오리진 창립 후 당시 화단의 실험 정신의 작품을 선보였고, 한 평생 추상회화만을 고집하며 우리 미술의 정체성에 대해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서승원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 전시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지하1층'.(사진=아라리오 갤러리)
'서승원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 전시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지하1층'.(사진=아라리오 갤러리)

서승원 작가는 "60년대까지 서구의 미술인 앵포르멜과 액션페인팅이 지배하던 시절, 왜 이런 그림을 그려야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지성과 지각적 사고를 통해 우리 것을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1963년 홍익대학교 출신을 주축으로 '과거의 미술이 아닌 새로운 미술을 도전하고, 우리의 미술을 만들자'고 주장하며 오리진 을 창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선배들로부터 '니들이 새로운 미술을 해'라는 비난도 많았죠, 하지만 4.19혁명과 같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자는 공감대를 형성된 상태라, 우리의 것을 찾기 위해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발표했다"고 덧붙였다.

서승원, '동시성(Simultaneity 69-1)'. 116.5x91cm, Oil on canvas, 1969.(사진=아라리오 갤러리)
서승원, '동시성(Simultaneity 69-1)'. 116.5x91cm, Oil on canvas, 1969.(사진=아라리오 갤러리)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 서 작가는 "'이것도 그림이냐'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먹을 것도 없이 가난했던 시절에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바보고 멍청하고 미친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며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별것 아닌 작업이지만, 그 당시에 오방색을 중심으로 한 환원적인 그림을 그리며 과거와 다른 새로운 그림을 그리자고 맘을 먹은 것이 오늘의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시발점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서승원은 1960년대 국내 화단의 주류였던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 중심의 사실주의와 비정형추상회화 운동인 앵포르멜(Informel) 사이에서 독자적 경향을 모색했던 추상 화가이다.

1963년 기하추상회화 그룹 '오리진(Origin)'을 창설했으며, 1967년 젊은 작가들이 파격적 시도를 대거 선보였던 '청년연립작가전'에 오리진의 멤버로 참여해 사각형과 삼각형, 색 띠 패턴과 빨강, 노랑, 파랑 등 오방색을 사용한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서승원, '동시성(Simultaneity 17-122)'. Acrylic on canvas, 193.9x259.1cm, 2017.(사진=아라리오 갤러리)
서승원, '동시성(Simultaneity 17-122)'. Acrylic on canvas, 193.9x259.1cm, 2017.(사진=아라리오 갤러리)

◆‘흰색보다 더욱 하얀 흰색’, 단색화 원조로 우리의 미감 선보여◆

"평생 추상만을 작업한 것 같습니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 못 먹어 죽어도 오로지 내 그림만 쫓아온 작가로 봐 달라.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 생각하죠."

수년 전부터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단색화'에 대해서 서 작가는 "최근 백자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한국의 흰색은 어불성설이다. 70년대 내가 추구했던 흐리면서도 희고, 희면서도 하얗지 않는 우리 선조의 정신이 바로 단색화가 아닐까 한다"며 "2016년 한국단색화전에서도 내 그림이 단색화의 원조라고 평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단색화 즉, 흰색 그림이 주목을 받은 것은 1975년 일본 도쿄(東京) 긴자에 위치한 동경화랑에서 개최한 '한국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白)'전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서승원, '동시성(Simultaneity 18-212)'. 90.9x116.7cm, Acrylic on canvas, 2018.(사진=아라리오 갤러리)
서승원, '동시성(Simultaneity 18-212)'. 90.9x116.7cm, Acrylic on canvas, 2018.(사진=아라리오 갤러리)

당시 전시에 참여했던 권영우, 허황, 박서보, 서승원, 이동엽 등 한국의 5인 작가의 작품을 찾았던 당시 동경화랑 야마모토 사장이 "한국의 흰색은 일본에서 말하는 백색도 아니고 묘한 색이다. 어느 색에서도 볼 수 없는 걸러진 흰색이다. 오묘한 색을 지닌 것이 바로 한국의 흰색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서승원 작가는 "흰색은 백색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색상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옥에서 살면서 어머님이 빨래를 하시고 다듬이도 두드리며 보여주었던 그 흰색, 우리의 색을 거르기 위한 것 바로 수행과정이 함께할 때 비로소 과거의 살과, 영혼의 삶이 버무려진 것이 바로 오늘날 말하는 단색, 백색 바로 흰색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서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 '동시성'은 이지적이고 절제된 형태로부터 벗어나 점차 자유분방한 양상을 보여 왔다.

서승원, '동시성(Simultaneity 70-19)'. 162x130cm, Oil on canvas, 1970.(사진=아라리오 갤러리)
서승원, '동시성(Simultaneity 70-19)'. 162x130cm, Oil on canvas, 1970.(사진=아라리오 갤러리)

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피안의 세계에서 발현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 동시성이라고 본다"며 "형태와 색채 그리고 공간 세 요소가 동일 값으로 하나의 평면 위에 동시에 어울린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서승원의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전은 1960년-80년대 절제와 엄격한 질서를 보이던 작품이 주관적 해석과 자기화를 거쳐 사색과 명상, 자유의 화면으로 변화한 궤적을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작가의 치열한 예술혼을 통해 작가의 고집스러운 탐구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작업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4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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