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하이경 작품에 관한 단상'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하이경 작품에 관한 단상'
  • 권도균
  • 승인 2018.03.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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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대표님, 이렇게 정성껏 전시에 신경 써주시는데, 작품이 많이 안 팔리면 미안해서 어떡하지요? 작가님, 괜찮습니다.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아트스페이스 H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하이경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아트스페이스 H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하이경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좋은 전시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저도 노력은 열심히 하겠지만, 팔리는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이 아닐까요? 언젠간 작품이 많이 팔리는 좋은 날도 올 겁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 작품이 너무 맘에 들어요. 매일 출근하면 작품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작품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작품 속 풍경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좋습니다. 잘 쓰는 글은 아니지만, 두어 시간 글을 쓰고 나면, 몸의 에너지가 쭉 빠지는 느낌이 들고, 피곤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매일 여덟 시간 이상 그림을 그리면, 힘들지 않으세요? 아뇨, 전혀요. 그림 그리는 일을 통해서 잡념도 걱정도 없어져서 너무 행복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다만 팔과 목에 생기는 통증만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예술가들의 직업병이겠죠.

​지난 십 년간 무수히 많은 전시를 했다. 그런데 이번 하 작가의 전시는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도, 기간을 연장하고 싶을 정도이다. 전시를 최소 한 달을 잡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하 작가의 작품과 사랑에 빠졌나 보다.

하이경, '남성역(Namseong Station)'. 80.3x116.8cm, oil on canvas, 2018.
하이경, '남성역(Namseong Station)'. 80.3x116.8cm, oil on canvas, 2018.

예술 작품은 기호품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담백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달달한 카페라테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림을 컬렉 하는 사람들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작품을 선택해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선택은 오로지 자신만의 취향인 것이다. 아무리 고가의 예술 작품도 내가 싫으면 싫은 것이다.

​갤러리스트가 된지 어느새 십 년이 되었다. 하 작가의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솔직히 예술 작품이 어떤 의미에서 좋은지 잘 몰랐다. 갤러리스트가 되기 전에 용돈을 모아 샀던 유명 작가의 수묵화를 보면서, 그림 감상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작품을 소유한 그 자체가 행복이었을 뿐, 작품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몰랐다. 소유가 진정한 행복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자, 소유한 작품이 관심에서 멀어져버렸다.

하이경, '가을 빛(Autumnal tints)'. 91x116.8cm,  oil on canvas, 2018.
하이경, '가을 빛(Autumnal tints)'. 91x116.8cm, oil on canvas, 2018.

수많은 작품을 팔면서, 가끔씩 혼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자문해본다. 컬렉터들은 왜 이 작품을 살까? 이 작품을 통해서 과연 행복할까? 과시용 소유일까? 인테리어 소품용일까? 투자 대상으로 구입하는 것일까? 작품에서 진정한 만족을 느끼는 걸까?

글을 쓰는 동안, 딸아이와 함께 온 가족과 짧은 대화를 해보았다. 하 작가의 작품들은 중년 여성의 시각으로 일상을 기록한 일기장입니다. 대표님, 작품들이 너무 좋습니다. 모든 예술가들이 일기장 같은 그림을 그릴 수는 있어도, 누구나 이런 느낌을 주는 작품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을 끌어드리는 느낌이 담겨 있는 것처럼 생각되네요. 빛을 적절히 활용하는 기법도 좋은 것 같습니다. 작가님을 좀 뵙고 싶네요. 다음 주에 다시 한번 올게요. 좋은 작품 잘 보았습니다.

​작품 판매를 떠나서 누군가를 작품으로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예술가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갤러리스트 입장에서도 이럴 때는 작품 팔린 것 마냥 기분이 좋다.

하이경, '둘레길(Dulle-gil)'. 72.7X60.6cm, oil on canvas, 2018.
하이경, '둘레길(Dulle-gil)'. 72.7X60.6cm, oil on canvas, 2018.

예술은 느끼는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것이다. 억지로 작품에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다면, 작품이 주는 매력이 상실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자만의 그림 즐기는 방법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하 작가의 작품이 나를 유혹하는 이유를 안다. 캔버스에 유화라는 점만 빼면, 작품들에 일정하게 정해진 규칙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소재가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자연 풍경, 도시 풍경, 비 오는 풍경, 눈 오는 풍경, 물방울, 그림자까지도.

​작품 속 계절과 시간 대도 다양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침, 낮, 밤 등. 작품을 보면서 찌는 듯한 여름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눈 오는 겨울이 생각나기도 한다. 쓸쓸하게 보이는 밤의 풍경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작가의 그림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작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눈의 시점이 미술 이론의 규칙에서 벗어나서, 평범한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각도로 사물을 바라보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하이경, '집으로 가는 길(Way home)'. oil on canvas, 72.7x60.6cm, 2018.
하이경, '집으로 가는 길(Way home)'. oil on canvas, 72.7x60.6cm, 2018.

한국인이 일생 동안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밥과 김치일 것이다. 하 작가의 작품은 밥과 김치이다. 작품들의 소재가 너무 익숙한 주위의 풍경이라서, 강렬하게 유혹을 하지는 않더라도, 천천히 다가오는 밥의 담백한 맛처럼 생각된다. 익숙한 일상을 감싸고 있는 계절과 시간의 변화는 입맛을 북돋우는 김치의 맛처럼, 맛깔나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은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아야 한다.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들만의 독특한 느낌이나 매력이 있어야 한다. 하 작가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작업에 정진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까? 하 작가의 전시는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작품들을 보고 나서 건물 밖을 나서면, 화창하고 따뜻한 봄날 성북동의 고즈넉한 느낌이 작품과 오버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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