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성 '검은 소'에 투영된 '침묵의 진실' 토속적 화풍으로 드러내
황영성 '검은 소'에 투영된 '침묵의 진실' 토속적 화풍으로 드러내
  • 왕진오
  • 승인 2018.04.28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아트인포] "소는 한국 사람의 이미지와 닮았지요. 가족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소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죠."

'현대화랑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영성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현대화랑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영성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가족과 초가집 등 애틋한 향토적 정서를 화면에 완성시키는 황영성(77) 작가가 '검은 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4월 26일부터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8년여 만에 개인전을 펼치며 밝힌 속내다.

황 작가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는 다름 아닌 6.25 전쟁으로 인한 이주 때문이다. 전남 광주가 고향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강원도 철원 월정리(月井里)에서 태어나 자랐다.

당시 달의 우물이라는 월정리 마을주민들이 강제 이주로 내려온 곳이 광주였다는 것이다. 많은 이주민들이 다시금 서울로 돌았지만, 학교를 보내준다는 이야기에 초등학교 4학년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광주 토박이가 됐다고 전한다.

황영성, '소의 침묵'. 캔버스에 유채, 200 x 200cm, 1985.(사진=현대화랑)
황영성, '소의 침묵'. 캔버스에 유채, 200 x 200cm, 1985.(사진=현대화랑)

전시장에 걸린 '소의 침묵' 연작은 1970년대 작가의 회색시대 색조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구체적 형상이 선과 면으로 단순화되는 조형적 변화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황 작가는 "처음에는 하얀 소를 그렸다. 하얀 것은 백의민족인 한국인의 색채라 생각했다. 어느 날 검은 소를 그리고 싶었다"며 "모든 색채가 합쳐진 블랙은 욕망이나, 비밀 그리고 작가로서 숨겨진 것들이 검은색 속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80여 인생을 살면서 못 다한 표현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침묵의 진실을 작품으로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했다. 초기에 내 가족이야기를 담았는데, 해외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다 보니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가족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황영성, '마을 이야기'. 캔버스에 유채, 80 x 150cm, 1996.(사진=현대화랑)
황영성, '마을 이야기'. 캔버스에 유채, 80 x 150cm, 1996.(사진=현대화랑)

'소의 침묵' 시리즈는 향토적 소재와 회색조의 화면을 통해 서정적인 동시에 절제된 감정으로 드러난다. 또한 검게 칠해진 소들은 기존의 절제됐던 감정 표현을 함축하게 됐다.

작가 스스로 거쳐 온 '굴곡의 시대'를 대변하는 듯 한 여러 겹의 두터운 검정칠 속에서, '나'와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소'는 황 작가가 한때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그 침묵 너머의 이야기들을 '검은 소'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황 작가는 "하얀 소와 검은 소는 색채가 주는 단순한 의미를 넘는다. 하야색은 빛이 합쳐지지만, 검은 소는 잠재된 내 이야기들이 다 숨겨져 있는 표현이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 역사의 굴곡 등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쌓여온 말 못한 많은 것들.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검은 색에 담았다"고 말했다.

황영성, '가족 이야기'. 캔버스에 유채, 200 x 200cm, 2015.(사진=현대화랑)
황영성, '가족 이야기'. 캔버스에 유채, 200 x 200cm, 2015.(사진=현대화랑)

회색조로 그린 초가집 '토방'으로 1971년 제21회 국전에 특선을 하며, 화단에 주목을 받았던 작가는 1973년 '온고'란 작품으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그려낸 초가집은 당시에는 촌스러운 소재라 그리지 않았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몸속에 흐르는 DNA처럼 누가 설계를 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조형물이었다는 것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는 초가집을 만들 정도로 삶의 행위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스러운 조형감각에 맞아 떨어진 구조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황영성, '가족 이야기'. 캔버스에 유채, 53 x 72.7cm, 2017.(사진=현대화랑)
황영성, '가족 이야기'. 캔버스에 유채, 53 x 72.7cm, 2017.(사진=현대화랑)

작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가족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으려 격자형태 속에 각양각색의 형상으로 기호화된 사람, 동물, 이야기 등을 반복적으로 그려 넣으며 규칙적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인 화면을 구축했다.

황영성 회화의 양식적 모색과 변천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된 전시에는 '문자-형상' 시리즈가 함께해 눈길을 모은다.

황영성, '이태백의 장진주'.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200 x 200cm, 2014.(사진=현대화랑)
황영성, '이태백의 장진주'.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200 x 200cm, 2014.(사진=현대화랑)

이태백의 '장진구', 조조의 '단가행', 김소월의 '산유화', 이용악의 '그리움' 등 시구를 그림으로 바꿔서 시와 그림을 오가는 작가 고유의 '문자-형상' 작업을 만들어냈다.

'가족이야기' 시리즈가 격자무늬 속 무수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철학을 담았다면, '문자-형상'작업 속 한 문자 한 문자는, 시와 그림을 이뤄냄으로써 작품에 풍류적 측면을 더한다. 전시는 5월 27일까지.

(아트인포=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