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 아트 마켓의 현황 6'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 아트 마켓의 현황 6'
  • 권도균
  • 승인 2018.04.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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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진정한 컬렉터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Ars longa, vita brevis). 불과 어젯밤까지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었다. 고등학교 시절, 성문종합영어에서 알게 된 영어 문구였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전시작품'.(사진=아트인포)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전시작품'.(사진=아트인포)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의사이자, 서양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인용해서 썼다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이란다. 이 격언의 원문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고, 기회는 순간이고, 판단은 어렵고, 경험은 믿기 어렵다고 한다.

이 문장은 원문인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다시 영어로 번역한 것을 한역한 것이다. 예술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ars'를 히포크라테스는 의술 또는 기술의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다.

'ars'는 지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 tēchn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술 작품 다루는 일을 십 년째 하면서, 역시 예술은 길다는 의미를 제대로 실감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페친인 Jeong-Min Domissy-Lee 박사님이 프랑스 컬렉터인 필립 드로네이(Philippe Delaunay)와 인터뷰해서 보그 코리아(Vogue Korea)에 실린 좋은 기사 하나를 읽었다.

수십 년 동안 수집한 작품이 수 천 점인데, 작품의 대부분을 기억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각각의 예술 작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삶의 동반자란다. 이 프랑스 컬렉터 분이 예술 작품을 대하는 시각을 요약해서 인용해본다.

​작품 구입을 투자나 재산 증식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클래식 작품이나 유명 모던 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사는 것이 유의미한 선택일 수 있다.

'한국국제아트페어 전시장 모습'.(사진=아트인포)
'한국국제아트페어 전시장 모습'.(사진=아트인포)

하지만 내가 작품을 수집하는 이유는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이 시각매체를 통해 제시하는 철학적, 사회적, 문화적 비전을 공유하고, 그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구입하는 의미가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시대를 충실하게 살며 영위하는 것이고, 작가들이 창작 활동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게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며, 작가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예술이라고 하는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이 내일의 과거가 되듯이, 현재 활동하는 젊고 유망한 작가들이 바로 미래에 박물관에 소장되고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 작가들이다. 이 분은 작품 구매자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첫째, 예술 작품은 장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흔히 자기 집 커튼 색이나 벽 색깔 혹은 거실의 어느 가구와 어울릴 것 같아서 작품을 사는데, 이는 절대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은 그 자체로서 생명체처럼 존재하는 것이고, 작가의 삶이 진솔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란 구매자가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정신적, 감성적 교류를 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둘째, 초보 컬렉터들은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작품을 사는 것이 좋다. 시대적 진실에 민감하고 미학적 경험이 풍부하며,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미술계 관계자들, 컬렉터, 큐레이터, 비평가, 작가, 갤러리스트 등.

처음에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수집해가면서, 서서히 스스로 작품을 보는 눈을 키우고 미술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기 나름의 취향과 추구하는 미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끝으로 작품은 머리로 생각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된 감성이 말하는 것을 듣고 선택하는 것이다. 어느 작가가 얼마나 인지도가 있는지, 유명한 갤러리에서 밀어주는 작가인지, 작품이 얼마 후에 얼마나 오를 것인지 머리로만 생각하고 계산해서 작품을 사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와 작품의 가치는 단지 현재 평가된 수치적인 지표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메이저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유명한 아트 페어에 자주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이 반드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경제적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거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현재 저평가되는 작품이나 아직 유명세를 얻지 못한 작가의 작품 중에 진정한 삶과 미에 대한 심오한 사색이 담겨 있으며, 예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열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이 많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말해주는 작품, 나의 잠재된 본능적 감각을 깨우고 건드려주는 작품, 매일 생활하는 공간에서 나에게 충만한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전시장의 갤러리리스트'.(사진=아트인포)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전시장의 갤러리리스트'.(사진=아트인포)

이 분의 생각이 우리들이 따라 해야 할 예술 작품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각을 가진 컬렉터들이 많이 늘어난다면, 작가들과 갤러리스트들이 얼마나 행복할까? 작가들은 작업할 맛이 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서양처럼 유명한 작가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가 턱없이 부족해서는 아닐지?

어릴 적 재밌게 읽었던 탈무드의 구절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사람은 태어날 때 주먹을 쥐고 태어나고, 죽을 때는 주먹을 펴고 죽는다는 구절이다. 태어남은 욕망의 시작이고, 죽음은 욕망의 끝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분명히 빈손으로 떠난다. 삶이란 허망한 것이다. 그럼에도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다가, 욕망의 허무감을 느끼면서 세상을 떠난다.

돈으로 갑질하는 사회나 자신을 위한 권력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예술 작품 구입에 돈을 펑펑 쓰는 사회로 바뀐다면, 세상이 조금은 아름답게 변하지 않을까? 

갤러리스트로서의 행복은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얻는 기쁨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작업을 할 때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힘들어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 중 하나로 예술 작품 감상과 구입이라는 생각을 모든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우리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은 멋진 건축물과 예술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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