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일본회화의 거장들’로 조명한 중세부터 근대 일본 미술
호림박물관 ‘일본회화의 거장들’로 조명한 중세부터 근대 일본 미술
  • 왕진오
  • 승인 2018.05.0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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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인포] 일본의 중세에 해당하는 무로마치(室町)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 에도(江戸) 시대를 지나 근대에 제작됐던 회화 작품들이 한국 관람객들을 만난다.

하나부사 잇쵸, '남가몽도'. 17-18세기.(사진=호림박물관)
하나부사 잇쵸, '남가몽도'. 17-18세기.(사진=호림박물관)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의 첫 외국미술 전시 '일본회화의 거장들'이 4월 24일부터 신사동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막을 올렸다. 한국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일본미술 작품이 처음 공개되는 자리로, 호림박물관 컬렉션의 면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자리이다.

전시는 수묵화와 채색화로 구분해 작품을 선별해 소개한다. 수묵화는 동아시아 회화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기법이자 하나의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송대(宋代)에 수묵화의 이론과 기법이 집대성된 이후 많은 변용과 발전이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 이후 선종(禪宗)과 함께 중국 송(宋)·원대(元代)의 수묵화가 유입되며 유행했다.

산쥬로쿠닌카슈 12폭병풍, 17세기 말.(사진=호림박물관)
산쥬로쿠닌카슈 12폭병풍, 17세기 말.(사진=호림박물관)

‘스미에(墨絵)’라고 부르는 일본의 수묵화는 14세기 이후 중국 명(明)과의 교역을 통해 수용한 중국 수묵화의 영향을 받아 성행하기 시작했다.

수묵화는 중국 문화를 선호했던 쇼군(將軍)과 여러 다이묘(大名)들에 의해 선종(禪宗), 다도(茶道), 정원(庭園)과 함께 발달한 대표적인 중세 문화가 됐다. 수묵화가 유행하는 가운데 15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화가집단이 등장했다.

가노파(狩野派)라는 어용회사(御用繪師) 집단이 대표적이다. 가노파는 미닫이문, 병풍 등 실내 공간을 장엄하게 장식하는 회화양식을 창출하면서 권력자들의 애호와 후원을 받게 됐다.

한편 18세기에는 중국 강남지역의 문인문화가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부상한 도시문화와 함께 상인계급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다.

이토 신스이, '은하축제도'. 1946년경.(사진=호림박물관)
이토 신스이, '은하축제도'. 1946년경.(사진=호림박물관)

문인문화의 저변화를 바탕으로 일본 문인화, 즉 남화(南畵)도 함께 화단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남화가들은 중국 문인화론을 수용하되 일본의 회화전통과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개성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있었던 반면, 중국 명(明)·청대(淸代) 문인화의 주제와 화법을 충실하게 따랐던 화가들도 있었다.

'일본회화의 본질 드러내...전통 채색화'

일본 화가의 채색 감각은 그들만의 독창성을 오롯이 보여주어 한 눈에 봐도 이것은 일본회화다라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일본의 채색화 전통은 헤이안(平安) 시대 후기인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7~9세기동안 일본은 견수사(遣隨使)와 견당사(遣唐使)로 대표되는 중국으로 보낸 사절단을 통해 중국회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으나 견당사를 폐지한 894년을 기점으로 일본만의 회화양식을 창출하게 됐다.

이렇게 발전하기 시작한 일본의 회화를 중국풍 회화를 의미하는 ‘가라에(唐繪)’, ‘간가(漢畵)’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야마토에(大和繪)’라고 부른다. 에도(江戶) 시대는 공식적으로 쇄국정책을 행한 시대였다. 그러나 외국과의 접촉이 모두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우타가와 구니요시, 우키요에, 19세기 중반.(사진=호림박물관)
우타가와 구니요시, 우키요에, 19세기 중반.(사진=호림박물관)

외국과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재정확대와 이를 통해 지방 다이묘(大名)들에 대한 견제를 원했던 에도막부는 4개의 교역 창구(四つの口)를 지정해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나가사키(長崎)이다. 나가사키에서 행해진 중국과의 교역은 18세기 초반에 이르러 교역량이 대폭 증가할 정도로 점차 활성화됐다.

청(淸)의 상인들은 주로 강남의 강소(江蘇)·절강(浙江)지역 출신이었는데 이들을 통해 그 지역에 유존되고 있던 오파(吳派)·사왕화파(四王畵派)의 회화가 일본에 유입될 수 있었다.

가노 쓰네노부, '포대화상도'. 17세기.(사진=호림박물관)
가노 쓰네노부, '포대화상도'. 17세기.(사진=호림박물관)

한편, 에도막부가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는 조선(朝鮮)과 류큐(琉球)뿐이었다. 조선은 쇼군(將軍)의 즉위와 같은 경사를 축하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답례로 사절단을 파견했으며 이 사절단을 통신사(通信使)라고 한다.

통신사는 에도까지 가는 여정에서 일본의 많은 문인(文人)과 화가들을 만났으며 그 과정에서 조선과 일본의 회화교류가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는 중국, 조선과의 교류과정 속에서 활약한 에도시대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한일 근대회화의 첫 장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삼국의 회화교류에 대해서도 되새겨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전시는 9월 29일까지.

(아트인포=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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