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불운 딪고, 예술화업 펼친 작가 조명 ‘절필시대’ 展
시대적 불운 딪고, 예술화업 펼친 작가 조명 ‘절필시대’ 展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9.06.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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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이예진 기자] 우리 미술사에서 저평가된 근대기 작가를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해 선보인다. 월북화가와 이 시기의 화가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 절필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미완의 예술 세계를 펼쳐보인다.

임군홍, '가족'. 캔버스에 유채, 94 × 126cm, 유족소장, 1950.(사진=이예진 기자)
임군홍, '가족'. 캔버스에 유채, 94 × 126cm, 유족소장, 1950.(사진=이예진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채색화가 정찬영(鄭燦英, 1906~1988)과 백윤문(白潤文, 1906~1979), 월북화가 정종여(鄭鍾汝, 1914~1984)와 임군홍(林群鴻, 1912~1979),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李揆祥, 1918~1967)과 정규(鄭圭, 1923~1971) 등 6인의 미술세계를 조명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 시기, 전후 복구기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의미 있는 작품 활동을 보여준 작가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덕수궁 전관에서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전을 5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근대화단의 신세대 : 정찬영, 백윤문’, ‘해방 공간의 순례자 : 정종여, 임군홍’, ‘현대미술의 개척자 : 이규상, 정규’ 총 3부로 구성된다. 

▲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채색화조화와 채색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낸 신세대 화가 정찬영과 백윤문을 소개한다. 

정찬영의 '식물세밀화' 초본.(사진=이예진 기자)
정찬영의 '식물세밀화' 초본.(사진=이예진 기자)

정찬영과 백윤문은 각각 이영일과 김은호의 제자로 ‘근대화단의 신세대’로 등장했으나 해방 후 채색화에 대한 편견이 강해지면서 화단에서 잊혀졌다. 

이번 전시에는 정찬영의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식물세밀화'와 초본 일부를 최초 공개한다. 정찬영의 남편이자 ‘1세대 식물학자인 도봉섭’과 협업한 식물세밀화는 근대 초기 식물세밀화의 제작사례이다. 

정찬영은 1939년 8개월이 된 둘째 아들을 병으로 잃고 그 충격으로 화필을 접게 된다. 1940년대 남편이 한국의 유독식물에 대한 연구를 계획하자, 이를 돕기 위해 식물세밀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백윤문은 김은호의 화풍을 계승해 채색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냈고, 남성의 생활을 소재로 한 풍속화로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대표작 ‘건곤일척’(1939)을 볼 수 있다. 

그는 1927년 ‘춘일(春日)’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이래 1940년까지 약 30점의 작품이 입선과 특선했다. 1942년 병으로 쓰러진 뒤 35년 동안 투병했다. 1977년 기적적으로 일어나 이듬해 ‘향당 백윤문 재기전’을 개최하고 이후 미국 순회전을 준비하던 중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김은호와 차별되는 남성적이고 강건한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덕수궁미술관 1층 로비에 설치된 정종여 작가 '의곡사 괘불도'.(사진=이예진 기자)
'덕수궁미술관 1층 로비에 설치된 정종여 작가 '의곡사 괘불도'.(사진=이예진 기자)

▲월북화가 정종여와 임군홍을 소개한다. 이들은 해방 후 1940년대 화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월북 이후 남한의 미술사 연구에서 제외됐다. 

정종여는 수많은 실경산수화와 풍경 스케치를 남겼다. 그가 월북 전에 남긴 작품과 자료를 바탕으로 남과 북에서의 활동을 함께 조명한다. 

정종여가 제작한 ‘진주 의곡사 괘불도’(등록문화재 제624호)도 선보인다. 6미터가 넘는 괘불로 전통 불화 양식이 아닌 파격적인 채색 화법으로 그려졌다. 사찰에서 1년에 단 하루만 공개하는 그림이지만 특별히 이번 전시기간 동안 감상할 수 있다. 

보통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그림들은 ‘화승’이라고 불리는 승려들이 제작하는데 일반화가인 정종여가 의식용 괘불을 그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종여는 전통적인 불화 양식을 따르지 않고 동양화풍의 맑은 채색화법으로 이 괘불을 완성했다.

임군홍은 중국 한커우와 베이징을 오가며 자유로운 화풍의 풍경화를 남겼다. 또한 그가 광고사를 운영하며 직접 그린 관광 브로슈어 도안 등의 아카이브를 통해 초기 광고디자인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진행된 '절필시대'에 설치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예진 학예연구사'.(사진=이예진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진행된 '절필시대'에 설치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예진 학예연구사'.(사진=이예진 기자)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라 불리는 이규상과 정규를 소개한다. 이들은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등에 참여하며 해방 후 현대미술 화단 선두에서 활동했으나 이른 나이에 병으로 타계하고(이규상 50세, 정규 49세) 작품이 적어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이규상은 1948년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미술 단체인 ‘신사실파’를 결성하며 한국 현대 추상회화의 1세대로 활동했으나 남아 있는 작품이 10여 점에 불과하고 알려진 행적이 없다. 

또한 1961년 홍익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뒤 1963년 두 번째 개인전에는 더욱 단순화된 추상화를 발표함. 당시의 추상화 경향과 달리 일체의 형상이 배제된 극도로 간결한 그림들로 화단의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62년 생활고로 일본인 부인과 세 자녀는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본인은 남아 가난과 병환에 시달리다 1967년 타계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이규상과 관련된 아카이브와 제자, 동료 등과 인터뷰한 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정규는 서양화가로 출발해 판화가, 장정가(裝幀家), 비평가, 도예가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으나 그에 대한 평가는 회화와 비평에 국한됐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설치된 정규 작가의 작품'.(사진=이예진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설치된 정규 작가의 작품'.(사진=이예진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정규의 작품세계가 ‘전통의 현대화’, ‘미술의 산업화’로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했으며 특히 후기에 가장 몰두했던 세라믹 벽화를 소개한다.

벽화에는 전통 가마에서 구워진 옹기, 조선시대 가마에서 수집한 도자기 파편이 사용됐다. 중앙의 거대한 원형은,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거대한 크기와 두께감에서 부조 조각을 방불케 한다. 

전시 연계 행사로 ‘한국 근․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형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9월 7일 개최된다. 미술사학연구회와 공동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참여 작가와 작품세계를 주제로 연구자 5인이 발표할 예정이다. 별도의 신청 없이 참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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