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2,'고정수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2,'고정수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06.08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 H] '한국의 美라는 진주를 찾아서, 조각의 바닷속을 쉼 없이 탐험하는 고정수 작가'

스승인 조각 9단 전뢰진 작가가 동심과 놀이를 평생의 모토로 삼았다면, 스승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각 7단 고정수 작가 또한 청춘의 마음과 작업의 유희가 삶의 나침반이다.

고정수, '사랑과 미움'.
고정수, '사랑과 미움'.

청춘은 변화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청춘이 가진 호기심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평생을 청년처럼 작업하며, 작업을 유희로 간주하며 즐긴다.

공자는 논어에서 70세라는 나이를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 不踰矩)라 했다. 마음 가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정수 작가에게 이 말은, 상아탑 속 예술 세계에 존재하는 보수적인 조각의 형식을 벗어나서, 자유자재로 작업을 해도 멋진 조각 작품이 나온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고정수 작가는 열정과 패기로 무장한 청년 같은 조각가다. 70세라는 나이가 무색하리 만큼, 에너지가 넘치고, 정열적이며, 진취적이다.

​작가는 28세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다. 하지만 스승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41세에 월급과 명예가 보장되는 교수라는 직업을 과감하게 버린다. 가르치는 일과 작업하는 일이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과거로 되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 고정수 작가와 구상조각회 심사를 함께 해본 적이 있었다. 나이와 경력으로 심사 진행을 좌지우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심사한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였다. 의견이 충돌할 경우에도 합리적으로 중재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작가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물보다도 더 차다 (氷水爲之而寒於水)는 말은 순자의 말이다. 유명한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과 대구로 나오는 문구다.

고정수 작가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스승 전뢰진 작가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가 나왔을 때, 스승은 비로소 진정한 스승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정수 작가의 작품 세계는 대략 1기와 2기로 나눌 수 있다. 50여 년 작업의 산물인 1기 시기의 작품들은 육등신의 풍만한 여체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뢰진 작가의 얼굴이 직사각형에 가깝다면, 고정수 작가의 인체는 얼굴부터 몸까지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느낌이다. 전뢰진 작가의 작품이 직선과 곡선이 결합된 투박한 소박미라면, 고정수 작가는 아주 부드러운 곡선미에 세련미와 정제미가 더해진다.

​평생 돌 만을 고집했던 스승과 달리, 고정수 작가는 돌, 석고, 테라코타, 브론즈, 알루미늄 래핑, 더 나아가 바람을 가득 채운 풍선과 같은 공기 조형물 등 새로운 재료에 대한 시도와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스승이 무심의 세계에서 작업을 한다면, 고정수 작가는 유심 또는 진심의 세계에서 작업을 한다.

​욕망은 삶의 동력인가? 아니면 괴로움의 뿌리인가?라는 제목의 불교 서적이 있다. 불교에서 욕망은 무지의 산물이고, 윤회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 갇힌 현상계의 삶 속에서 욕망은 삶의 동력이고, 꿈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의 시작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정수 작가는 끊임없이 욕망한다. 예술가라는 명예로운 이름값에 걸맞게 동시대 사람들과 후세의 사람들에게 멋진 조각 작품을 남기는 것이 궁극적 욕망의 종착점일 것이다. 이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작가는 변화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9년 세종시 베어트리파크 개원을 위해서, 2006년부터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수 십 마리의 반달곰들을 오랫동안 관찰했다고 한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랫동안 여성의 나신 작품에만 천착했던 작가의 2기 작품의 새로운 소재는 반달곰이다. 여성의 나신 작품들이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다양하고 재밌는 동작을 연출하는 곰돌이 작품들은 철저히 대중들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고정수, '자매'.
고정수, '자매'.

2014년 5월, 새총 곰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문신미술상 수상 기념 전시가 열렸던 숙대 전시장에서 처음 고정수 작가의 작품을 접했다. 곰돌이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줄다리기도 하고, 신나게 말뚝박기 놀이도 하는 다양한 모습의 곰돌이들의 표정이 익살스럽고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우리 전통 미술이 갖고 있는 해학미를 작품 속에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인 2008년에 디즈니에서 만든 쿵푸팬더 애니메이션이 개봉을 했다. 몇 년 전 키아프에 참가했을 때, 고정수 작가의 태권 곰돌이 형제를 전시했었다.

이때, 디즈니의 쿵푸팬더와 고정수 작가의 태권 곰돌이를 비교해보았다. 발차기 동작의 모습이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얼굴과 표정의 차이가 쉽게 느껴졌다.

​미국인 애니메이션 디자이너의 감성이 담긴 쿵푸팬더의 이미지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감춘 표정을 담고 있는데 반해, 고정수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한국형 곰돌이는 순박한 모습에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순수함 그 자체이다.

우리말 얼굴의 의미는 얼이 살고 있는 굴이란다. 즉 영혼이 살고 있는 집이 얼굴이란다. 고정수 작가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인들과 곰돌이들의 얼굴 표정은 맑은 영혼 그 자체라서, 밝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준다. 부드러운 행복의 미소부터 함박웃음까지, 예술 작품을 통해서 관람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인다.

작가란 직업은 자유로워야 하며, 예술은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는 평소 지론처럼, 지나치게 장식적이거나, 심하게 난해해져 가는 한국 현대 예술에서, 남녀노소가 편하게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하는 작가의 새로운 꿈과 도전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진지하지만 위트 있는 고정수 작가는 조선시대 달 항아리 속 곡선의 미와 해맑은 미소가 주는 아름다움을 이미 발견해서 예술 작품으로 표현했음에도, 여전히 청춘 같은 마음으로 끝없이 예술에 관해서 욕망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끝없는 열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고정수 작가님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