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남자의 그림 이야기, 컬렉터란 누구인가?-4
철학하는 남자의 그림 이야기, 컬렉터란 누구인가?-4
  • 아트인포(artinfo)
  • 승인 2017.10.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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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노자 도덕경 56장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초보 컬렉터 시절에는 작품들을 꽤나 쏠쏠하게 잘 팔았었다.

'홍콩 아트센트럴 아트페어 전시장'.(사진=왕진오 기자)
'홍콩 아트센트럴 아트페어 전시장'.(사진=왕진오 기자)

그런데 미술을 조금씩 알게 되면 될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다. 작품을 잘 팔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팔고 있는 것일까라는 회의감이 두렵게 엄습해온다. 내가 전시하고 판매하는 작품이 과연 좋은 작품일까?

전시마다 솔드 아웃되고, 작품 값이 계속 올라가고, 옥션에서 서로 사겠다고 하고, 주요 언론에서 다루어주고, 외국에서 잘 팔리고. 이러한 작품이 과연 진정으로 좋은 작품일까? 의심과 분석에 기초를 둔 철학이라는 학문을 배운 것이 가끔은 인생을 사는데 마음을 힘들고 괴롭게 만드는 듯싶다.

중학교 때 김환기 작품 한 점이 집에 걸려 있었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일 년 동안 집에 잘 걸려 있던 김환기 작품이 안 보였다. 어머니께서 사셨던 작품을 아버지께서 오른 가격에 파시고, 그 돈으로 골동품을 사셨다. 당시에 아버지는 골동품을, 어머니는 현대 미술 작품을 사셨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김환기, 박수근, 유영국, 전혁림의 작품들을 좋아하셨고, 가격도 무척 저렴했어서 사고 싶었다고. 그런데 아버지께서 골동품을 사시느라, 어머니가 원하는 근 현대 미술 작품들을 안 사주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아쉬운 일이다.

과거에는 프로로 활동하는 예술가의 숫자가 무척 적었기 때문에, 맘에 드는 작품을 사기만 했다면, 지금쯤 모두 오른 가격에 거래가 되는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작품을 선택하기가 무척 쉬웠을 것이다.

2015년 말, 한국미술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작가의 수는 3만 명 정도이다. 지금은 더 많아졌을 것이고,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작가의 숫자도 꽤 많다.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하는 프로 전업작가의 숫자를 만 명이라고 가정해보자. 만 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어떤 작품을 구매해야 좋은 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관점에서, 미술을 보는 나의 안목은 어느 수준일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권해야 하는지, 컬렉터가 사고 싶은 작품을 권해야 하는지,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권해야 하는지, 인기 있는 작품을 권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예술성이 있는 작품을 권해야 하는지?

한 달에 두 번, 작가들을 초대해서 개인전을 열어준다. 그중에서 작가들을 선별하여 아트 페어에 참가시킨다. 갤러리 전시장과 아트 페어 부스에 걸린, 내가 직접 선택한 작품들을 보면서, 미술의 끝은 어디일까를 고민해본다. 다른 부스에 걸린 작품이 더 좋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컬렉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우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는 컬렉터 분은 자신의 연봉의 10 퍼센트를 매년 작품 구입비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작품 구입 예산을 정하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다.

과거 시절의 나의 아버지는 컬렉팅 중독증에 걸리셨었다. 중독증 증세는 사고 싶은 것을 못 사게 되면, 잠을 못 자고 눈에 아른거린다고 한다. 작품을 구입한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안정된다. 하지만 예산을 정해놓지 않으면, 예산을 초과하게 되어서 빚을 지게 될 수도 있다. 아버지 사업 부도의 원인은 바로 컬렉팅 중독증이었다.

어떤 월급쟁이 컬렉터는 사고 싶은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악착같이 용돈을 절약하고, 작품 구입에 조금 모자라는 돈은 샀던 작품 중에 제일 질리는 또는 충분히 즐겼던 작품을 팔아서 보탠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일정한 예산 범위 내에서 꾸준히 작품을 사는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시장에 많이 가보는 것이다. 많이 보면 안목이 생긴다. 특히 좋은 작가라고 평가받는 전시를 자주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전시는 반드시 보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전시라고 다 같은 전시는 아닐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구입하려고 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해야 한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연구와 비교를 하고 자동차를 사는 이치와 똑같다. 작가의 프로필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작업의 공백기는 없었는지, 개인전은 꾸준히 해왔는지, 작품 소장처는 어디인지 등을 자세히 알아보아야 한다.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림은 작가의 자화상이다. 작가를 보면, 그림이 보인다.

네 번째는 모험심이 있는 컬렉터라면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작가들을 공략하면 좋을 것이다. 작품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작가가 중도에 작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서, 절대적인 안목과 경험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 구입에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40대 중반에서 50대의 후반의 작가들을 공략하면 비교적 안정적이다. 40대부터 환갑까지 작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돈 걱정 없이 작품을 구입할 수 있지만 안정성을 지양하는 컬렉터라면, 이미 작품값이 오른 작가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르면 될 듯하다.

마지막으로 좋은 작품을 선별할 능력이 없다면, 좋은 작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것 같다. 그림을 많이 사 본 지인이나, 믿을 만한 갤러리스트에게 자문을 구하면 될 것이다.

제대로 갤러리를 경영하고 있는 갤러리스트라면, 컬렉터가 원하는 대부분의 작품을 구해줄 수도 있다. 간송 전형필에게는 감식안을 가진 위창 오세창이 있었다. 스스로의 감식안이 완성될 때까지만이라도, 전문가의 조언과 도움을 받고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많이 팔아 본 사람의 안목과 작품을 많이 사 본 사람의 안목을 상상으로 비교해 보았다. 막상막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신중한 성격을 가진 작품을 많이 사본 사람의 안목이 훨씬 낫지 않을까? 유행을 좇는 성향이 강한 한국인들에게 미술 작품 구입이 유행인 시대가 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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