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6 '인샤오펑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6 '인샤오펑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07.0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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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종교 안에 내재되어 있는 美를 조각하는 인샤오펑(殷晓峰) 작가 이야기"

중국 동북사범대학 교수인 인샤오펑 작가는 몇 년 전부터 알게 된 중국인이다. 부인도 조각 작업을 하는 부부 조각가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국과 한국인들을 너무 사랑해서, 매년 한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다.

'인샤오펑 작가'.(사진=아트인포)
'인샤오펑 작가'.(사진=아트인포)

한국에 올 때마다 저녁을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친한 친구가 되었다. 중국어 단어인 라오 펑여우(老朋友)처럼 말이다. 소마 미술관 초대 전시도 하였고, 성신여대 미술관에 커다란 작품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연배가 두 살 위인 작가는 홍콩 영화배우 같은 외모,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유모와 따뜻한 미소, 점잖은 목소리와 패션 감각도 탁월한 멋진 신사 같은 느낌이다. 독한 담배와 고량주를 즐겨 하고, 상대에게도 술과 담배를 스스럼없이 권하는 인간미 넘치는 스타일의 작가라고 생각된다. 

작가를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술잔을 여러 번 원 샷 하고 나자, 누군가 전생 이야기를 꺼낸다. 권 대표가 런던에서 인도 티베트 불교를 전공해서, 가끔 신이 내리면 전생을 봐준답니다. 그 순간, 인샤오펑 작가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나는 전생에 어떤 사람이었나요라고 묻는다.

​술의 취기가 올라오면서, 대만 유학시절 익혔지만 지금은 잊어버린 중국어가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불교를 책으로 배웠을 뿐, 몸으로 불교를 익힌 수행자가 아니라서, 전생을 볼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윤회를 믿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현재의 모습에는 분명히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아 있는 흔적을 추리해보는 것일 뿐입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은 청나라 황제의 호위 무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학문과 무술에 뛰어나서, 당대 최고의 무사였지요. 독실한 불교 신자라서, 벌레 한 마리 죽이는 것을 꺼려 했을 것입니다.

'인샤오펑, '군상'.
'인샤오펑, '군상'.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사라는 직업상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했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늘 혼자였던 것 같습니다.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낼 때는 나무를 깎아서 목각 인형을 만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던 것 같네요. 나라와 황제를 위해서 싸웠을 뿐, 무고한 사람을 이유 없이 해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생에 교수이면서 성공한 조각가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전생의 취미가 현생의 직업이 되셨네요. 참고로 이 이야기는 술자리를 재미있게 하려고 즉흥적으로 만든 소설일 뿐입니다. 절대로 믿지 마세요. 작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술을 마셨다.

​인샤오펑 작가는 전형적인 중국 대륙의 조각가들처럼, 작업 스케일이 남다른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작가의 두 작품만을 논하고자 한다. 위쪽 두 장의 사진 이미지 작품은 행자(行者)라는 제목으로 티베트 승려들을 묘사한 작품이고, 아래쪽 두 장의 사진 이미지 작품은 수정마마인(修正嬷嬷人)이라는 제목으로 만주족 샤머니즘 종교 의식에 등장하는 종이 인형 마마인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티베트 불교는 익숙하지만, 사만교라고 발음되는 만주인들의 샤머니즘 종교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얄팍한 지식이 전부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밌게, 재밌는 것을 진지하게, 진지한 것을 유쾌하게, 그리고 유쾌한 것을 어디까지나 유쾌하게. 일본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말이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글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인데 마음에 와닿는다.

​인샤오펑 작가의 작품과도 잘 어울리는 문장 같아서 인용한 것이다. 작가는 심오한 티베트 불교 사상을 티베트 승복을 입은 스님들의 심오한 얼굴과 장삼(長衫)에 만든 여러 개의 주름으로 표현한다. 어려운 사색의 내용을 조형언어로 쉽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깊이감이 느껴지면서, 진지한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인샤오펑 작품'.
'인샤오펑 작품'.

심오한 사색에 잠긴 티베트 스님들의 형상과 대조적으로, 만주인들의 마마인을 표현한 작품에서는 진지한 샤머니즘을 친근하고 유쾌한 느낌의 얼굴 표정으로 표현한 점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장난꾸러기 어린아이들의 얼굴 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하지만 마음에 울림 있게 묘사한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고요함 속의 고요함은 참된 고요함이 아니다.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얻어야, 비로소 천성의 진정한 경지인 것이다. (靜中靜非眞靜 動處靜得來 纔是性天之眞境)

즐거움 속에서 즐거움은 참다운 즐거움이 아니다. 괴로움 속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이라야, 비로소 몸과 마음의 진정한 기틀을 보는 것이다. (樂處樂非眞樂 苦中樂得來 纔見心體之眞機). (채근담 전집 88장)

​인샤오펑 작가를 만났을 때, 작가의 예술철학과 작품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철학은 정중동(靜中動)인 것 같다. 움직임 없는 조각 작품에 정적인 느낌을 담고, 정적인 가운데 동적인 생명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티베트 승려들의 얼굴은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이며, 장삼에 잡힌 여러 개의 주름을 통해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얼굴 표정을 통해 정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장삼에 만든 겹겹의 주름을 통해 동적인 느낌을 표현한다. 정중동이고, 동중정이다.​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말은 옛날 유럽 학자들이 만든 말이고, 티베트 불교가 맞는 말이다. 참고로 달라이 라마는 바다를 뜻하는 몽고어 단어 달라이와 스승을 뜻하는 티베트 단어 라마가 결합된 단어다. 런던대 유학 시절 티베트 스님과 수업을 함께 들은 적이 있었다. 승복 대신 사복을 입고 수업을 듣던 티베트 스님은 평범하고 따뜻한 동네 아저씨 같았다.​

만주인들이 믿는 종교는 어쩌면 한국의 무속신앙 및 제사 의식과 유사한 점이 있는 듯하다. 실제 마마인을 본 적은 없지만, 만주인들은 명절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종이로 만든 마마인을 제사상에 올려놓는 것이 전통이란다.

인샤오펑, '군상'.
인샤오펑, '군상'.

깃발이 부착된 승마 구두를 신은 모습인데, 만주인들에게는 조상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마인은 조상을 숭배하는 만주인들에게는 사악한 기운을 막고, 복을 부르며, 장수와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상의 물건이다.​

수정마마인(修正嬷嬷人)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은 뒷머리를 길게 늘어 땋아 놓은 세 사람이 말의 등에 올라타 있는 모습이다. 아이 같은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은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간결하고 단아하면서도 순박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인샤오펑 작가는 다양한 중국 민족들의 전통문화를 재해석해서 작품으로 보존하고, 종교에 내포되어 있는 심오한 사상을 쉬운 시각적 언어로 설명하며, 인체 작업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과 실존을 탐구하는 작가라고 결론을 맺고 싶다. 작가의 다음 작업을 위한 탐구 대상이나 주제는 무엇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라오 펑여우인 인샤오펑 작가가 앞으로도 더욱더 멋진 작품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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