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에디터 나하나의 월드리포트] 현대미술의 기반이 된 종교화, 운터린덴 미술관 '이젠하임 제단화'
[아트에디터 나하나의 월드리포트] 현대미술의 기반이 된 종교화, 운터린덴 미술관 '이젠하임 제단화'
  • 나하나 기자
  • 승인 2018.07.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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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하나]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대표작이자, 종교 제단화의 최고봉에 위치하는 ‘이젠하임 제단화(1512~1516).’

해마다 방문객의 수만 20만 명이 넘는다는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작은 마을 콜마르 위치한 ‘운터린덴 미술관(Musee Unterlinden).’ 바로 이곳이 ‘이젠하임 제단화’의 소장처다.

운터린덴 미술관,'이젠하임 제단화'.(사진=나하나)
운터린덴 미술관,'이젠하임 제단화'.(사진=나하나)

운터린덴 미술관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작품까지 엄청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작품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운터린덴 미술관’ 하면, 바로 ‘이젠하임 제단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장소에 대해 ‘이젠하임 제단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6세기 초,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이젠하임의 성 안토니우스 병원의 예배당 중앙 제단을 장식할 목적으로 M. 그뤼네발트에게 주문된 이 종교 제단화는 패널위에 그려졌으며, 높이 5m, 너비 3m로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당시에는 전무후무한 대형 제단화였다.

이 작품은 2중의 여닫이문과 총 9개의 다폭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책형, 부활, 수태고지를 묘사하였으며 종교미술로써의 충실함을 보여준다.

특히 그림의 중앙부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은 어둡고 고통스러우며 매우 처절하고 긴박한 표현으로 묘사됐으며, 창백한 피부색의 표현과 온 몸 곳곳에 세밀하고 생생한 끔찍한 상처들의 묘사는 곧 죽음을 앞에 둔 예수의 모습을 암시한다.

또한 당시 곡물껍질에 기생하는 맥각균으로 인해 혈관이 축소되며 죽는 피부병인 맥각병이 유행 했는데, 이를 예수의 다리 부분에 세밀하게 묘사했다.

운터린덴 미술관,'이젠하임 제단화'.(사진=나하나)
운터린덴 미술관,'이젠하임 제단화'.(사진=나하나)

이는 시대적으로 보았을 때, 당시 유행병인 맥각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종교적으로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터나, 현재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예수의 표현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처절하게 묘사되어 있는지 감상자들로 하여금 고스란히 이성을 마비시키는 상태로 만드는 그뤼네발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독일 르네상스와 더불어 표현주의 대표 작품으로 불리우는 ‘이젠하임 제단화’. 이 작품에서 그뤼네발트는 철저하게 종교적 목적을 실현했다.

이는 독일 르네상스가 후기 고딕에 전통을 두었던 부분을 생각했을 때, 왜 그를 독일 르네상스의 대표화가로 불렀는지 납득이 되는 부분이다.

또한 철저하게 미화를 배제하고 마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는 것처럼 표현한 사실주의적 방식은 현대미술로의 방향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이토록 중요한 작품이 대중에게 소개된 것이 불과 몇 년이 채 되지 않은 2015년부터라는 사실이다.

운터린덴 미술관,'이젠하임 제단화'.(사진=나하나)
운터린덴 미술관,'이젠하임 제단화'.(사진=나하나)

사실 이 작품은 1511년 이젠하임 지방의 성 안토니우스 수도회의 주문으로 그려졌으나, 1800년대 초반 화재로 인해 작품의 패널들이 분리 되어 흩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 지금은 운터린덴 미술관인 된 콜마르의 수도원에서 그 패널들을 모두 모았으며, 수십 년의 논쟁을 거쳐 최근에서야 복원을 마치고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하임 제단화’가 다른 종교 제단화에 비해 유난히 열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이 작품이 중세미술과 현대미술의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운터린덴 미술관'.(사진=나하나)
'운터린덴 미술관'.(사진=나하나)

‘예술의 목적은 아름다움에 있다.’

물론 현대미술에 있어서 이에 대한 논란이 많긴 하지만, 그 이전의 미술만 해도 이를 크게 위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하임 제단화’는 아름다움을 찾는데 목적을 둔 작품은 아니었다.

그의 소름끼치도록 처절하고 사실적인 묘사방식은 기존의 성스러움과 근엄함만을 추구하던 종교 제단화와는 분명히 차별성이 있다. 색채 표현에 있어서도 중세 미술과는 별개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 성화로써의 경이로움을 극대화 한 동시에 과거 미술에서 한 단계 나아감을 보여준다.

또, 구성면에서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쇠퇴를 맞는 세 폭 제단화의 형식이 피카소의 ‘게르니카’나 프란시스 베이컨의 ‘루시안 프로이트 습작 3부작’등의 현대미술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볼 때 예술이란 반드시 진보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며, 더불어 감상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작품이기에 또한 위대한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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