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6' 김인태 작가 이야기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조각조각 16' 김인태 작가 이야기
  • 권도균
  • 승인 2018.12.17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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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트스페이스 H]  ​1막: 뿌린 대로 거두리라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이 넓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새어나가지는 않는다. (種瓜得瓜 種豆得豆 天網恢恢 疎而不漏, 明心寶鑑, 天命篇)​

김인태, '부엉이'.
김인태, '부엉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성경, 갈라디아서 6:7)

동양의 사상은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우주의 이치를 발견하고, 삶의 지혜를 만들어왔던 것 같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기독교의 사상이면서, 불교의 업 사상과도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문장을 가끔씩 곱씹어 보면서, 때로는 이 평범한 진리에 감탄하기도 한다.

김인태 작가와의 인연은 2015년 북촌 갤러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김성복 교수가 제자인 김인태 작가 전시를 해주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했다.

당시에 작가는 기존의 작품 형식을 바꾸어서, 동물 조각을 처음 선보이는 시기였다. 몽타주라는 제목으로 1층과 2층에서 작가의 초대전을 열어주었다.

북촌 갤러리의 공간은 대형 조각 작품을 전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공간의 높이와 면적이 조각 전시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전시의 초점은 작가의 새로운 시도와 대형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아쉽게도 판매는 없었다. 하지만 젊은 작가를 위해서 전시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뿌듯했던 시기였다.

3년이라는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가버렸다. 그 3년 동안 김인태 작가는 이태리 카프리 섬에서 매년 개인전을 열었나 보다. 올 10월 키아프가 끝나고, 모처럼 갤러리 사무실에서 한가롭게 갤러리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시는 여성 사업가 한 분이 한글로 보낸 이메일 하나가 눈을 사로잡았다.

이태리 여행 중에 김인태 작가의 작품을 보았는데, 한국 작가라서 이왕이면 한국 갤러리에서 구입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외국에 사시기 때문에, 외국 작품만 구입하셨다고 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몇 번의 진솔한 이메일이 오고 간 후에 작품을 구입하시겠다고 결정하시고, 거금을 우리 갤러리를 믿고 선뜻 입금해주셨다. 유재석과 이적의 말하는 대로의 노랫말처럼,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김인태, '북극곰'.
김인태, '북극곰'.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김인태 작가 초대전을 열어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주의 이치는 틀리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갤러리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작품값이 선입금되어서, 컬렉터님과 작가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2막: 나비의 꿈(호접지몽)

예전에 장주(莊周)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로서,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자기가 장주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모르겠다. 장주와 나비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다. 이것을 물화(物化)라고 한다. (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莊子, 齊物論)

​장자가 말하는 물화는 차별성을 넘어서,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라고 한다. 자연의 만물이나 각기 다른 인간들의 모습이나 모두 시각적으로 다르게 보일 뿐, 우주의 이치에서 보면 동일하다는 사상이다. 우리는 왜곡된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세상을 잘못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인태 작가의 작품은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을 작품화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의 탄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비의 꿈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작가는 실수로 손을 크게 다쳤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2년간 제대로 조각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낙담했다고 한다.

​어느 따뜻한 봄날 작업실 앞에서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나비들이 여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작가의 눈에 들어온 나비는 너무 아름다웠다. 순간 작가는 나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자그마한 나비 하나를 만들었다. 재미있었다. 재미있어서 만들었던 나비는 어느새 많아졌다. 수많은 나비 유닛을 결합해서 하나의 동물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채색을 하였다. 멋진 동물이 탄생되었다.

​수많은 나비들로 이루어진 북극곰, 늑대, 올빼미 등등. 멀리서 보면 북극곰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분명 수많은 나비들의 군상이다. 그렇다면, 북극곰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비들의 군상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비 유닛 만들기에 익숙해진 작가가 말한다. 나비가 날개를 편 상태의 유닛을 만드는 것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답니다.

3막: 세계로, 세계로...  

이태리의 예술 기획자이자 비평가인 마르코 이쪼리노 (Marco, Izzolino)는 김인태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분석했을까?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김인태 작가는 작은 유닛들로 만들어진 수많은 나비들을 통해서, 형상의 환영을 표현한다. 관람자에게는 조각 전체의 형상이 분명하게 보인다.

김인태, '늑대'.
김인태, '늑대'.

하지만, 그의 작품을 분석해보면, 나비들이 날아가서 사라져버릴 듯, 이미지라는 것이 얼마나 부서지기 쉽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므로 작가는 견고한 스테인리스 스틸로 작품을 만든다.

그럼에도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에서,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는 가는 선에 불과하다. 삶 속에서 어떤 순간은 실재하는 것처럼, 어떤 순간에는 단순한 환영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바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 동양과 서양의 사고가 뒤얽혀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3년간 이태리를 거점으로 유럽 미술 시장을 공략했던 작가의 내년 행보는 미국 진출이란다. 조각이라는 형상으로 세계인들과 소통하고, 단순한 동물의 형상이 아닌, 개념을 가진 작품으로, 한국 조각의 독특함과 색다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김인태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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