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삶의 모습을 편안하게 그려" 국제갤러리 민중작가 '민정기'展
"내가 본 삶의 모습을 편안하게 그려" 국제갤러리 민중작가 '민정기'展
  • 김재현
  • 승인 2019.01.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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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김재현 기자] 40여 년 이상 유화를 가지고 풍경화만을 중점적으로 다뤄온 민정기(70)의 예술 여정을 살펴보는 자리가 1월 29일부터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막을 올린다.

민정기, '청풍계 1'. Oil on canvas, 130 x 162 cm, 2019.(사진=안천호, 제공=국제갤러리)
민정기, '청풍계 1'. Oil on canvas, 130 x 162 cm, 2019.(사진=안천호, 제공=국제갤러리)

민정기는 1980년대 초 스스로 ‘이발소 그림’이라 지칭하는 작품들로 국내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국전을 중심으로 추대되던 순수미술 또는 추상미술에 대한 반(反)미학적인 공격에 근간을 둔 작품으로, 보통 이발소에 걸려 있던 세련되지 못하고 상투적이며 키치(kitsch)에 가까운 그림들을 당시 고급 재료로 여겨지던 유화 물감으로 정성스럽게 모사한 것들이다. ‘정성스러운 모사’에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깃들여 있었다.

민정기 작품의 ‘개별성,’ ‘독립성’ 그리고 ‘장소성’은 중요한 특징들로 부각됐다. 특히 작품의 독립성은 대상의 단순한 재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통의 도구 역할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었다.

민정기의 작품에 등장하는 전통 동양화나 고지도를 모방하는 그만의 고유한 화풍도 이러한 소통의 강조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예전 것들을 통해서만 오늘날의 것들을 그릴 수 있다”는 작가의 신념을 반영하는 것일 뿐 과거에 대한 회고나 노스탤지어(nostalgia)와는 거리가 멀다.

민정기 작가는 "나를 민중미술 작가니 아니니 따지지 말고, 그저 현실에 반응하는 태도가 다양한 작가로 자연스럽게 봐주면 좋겠다"라며 "구상화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내가 바라본 삶의 모습을 편안하게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민정기, '백세청풍2'. Oil on canvas, 197 x 142 cm, 2019.(사진=안천호, 제공=국제갤러리)
민정기, '백세청풍2'. Oil on canvas, 197 x 142 cm, 2019.(사진=안천호, 제공=국제갤러리)

민정기는 자신이 그리는 곳의 ‘장소성’, 즉 해당 장소의 지형적, 지리적, 인문학적 지식이나 역사성에 주목해 그 장소만의 독자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민정기에게 작업은 스스로 ‘인연’이라 칭하는 작품과 본인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필연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답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이 몸소 다녀봐서 기억하고 있는 길들을 도해적 연결이나 지리적 배치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부암동 유 몽유도원'(2016)은 중국화를 연상시키는 무릉도원과 현재의 부암동을 병치시킴으로써 부암동의 태곳적 지세와 변모된 현실풍경을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주고, '수입리(양평)'(2016)은 동양화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전통적인 부감법과 투시도법을 재해석하며 산과 강의 현재적 상황을 민화적으로 풀어낸다.

역사를 시각화하고 평면회화에 시간성을 부여하는 민정기의 작업은 결과적으로 한 화면에 다양한 시점과 시간의 공존, 즉 공시성(synchronicity)을 야기한다. 그의 화면은 녹색 계열 또는 황색 계열의 통일된 색감으로 구성되어 마치 2차원적 화면의 평면성을 부각시키는 듯 보인다.

민정기, '여주 이포나루'. Oil on canvas, 158 x 363 cm, 2011.(사진=김영일, 제공=국제갤러리)
민정기, '여주 이포나루'. Oil on canvas, 158 x 363 cm, 2011.(사진=김영일, 제공=국제갤러리)

그러나 그 안에는 현대식 건물이나 간판이 과거로부터의 다양한 공간적, 시간적 층위들과 함께 해체된 후 재조합된 것처럼 원근법을 무시한 채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다.

민정기가 선택한 공시성의 방식은 ‘집단적 기억’ 같은, 애초에 통합될 수 없는 대상의 성질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이자 서구의 이분법적이고 선형적인 시간 인식에 대응하여 보다 풍부한 서사를 구성하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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