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남자의 그림 이야기-"한국화를 정의해보려는 시도"
철학하는 남자의 그림 이야기-"한국화를 정의해보려는 시도"
  • 아트인포(artinfo)
  • 승인 2017.10.17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화를 정의해보려는 시도' [글=아트스페이스H]

미리 결론을 말한다면, 한국화를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가 생각보다 의외로 쉽지 않다. 요즘 미술의 경향은 서양화, 동양화, 조각이라는 전통적인 구분 대신, 평면 (또는 회화)와 입체로 양분되는 추세다. 예전 글에 썼던 한국 철학은 존재하는 가처럼, 한국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추론해보려고 한다.

'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서양화와 동양화로 장르 구분이 아주 엄격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서양화 재료와 기법을 쓰면 서양화고, 한지, 장지, 순지와 같은 종이나 비단에 먹, 분채, 석채 등과 같은 재료로 전통 기법에 의해서 그리는 그림을 동양화라고 했다. 그 후에 동양화라는 단어는 점차 한국화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의 한국화는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가라는 답을 찾으려고 약간의 공부를 해보았다. 답을 찾았다. 바로 실경산수와 진경산수의 미묘한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실재하는 산수를 표현한 그림을 실경산수라고 한다. 고려시대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데, 중국의 화풍의 도입인 것이다. 한국의 서양화가 유럽이나 미국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처럼, 고려나 조선의 화법은 중국화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경산수는 무엇인가? 조선 숙종 때부터 영조와 정조 시대에 유행했던 화원들의 화풍이란다. 우리 강산의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중국의 실경산수를 한국화 시킨 것이 진경산수인 것이다. 정선과 김홍도가 만들어낸 진경산수의 특징은 우리나라 산천을 직접 가보고 스케치하여 그리는 방식인데, 중국의 화법에 구애됨이 없이 눈앞에 전개되는 자연을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재단하여 화면에 옮기는 방법이란다. 중국화에서 탈피한 진정한 한국화가 탄생한 것이다.

한국화의 외연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 기본적으로 한국화는 한국인이 그린 그림이어야 할 것이다. 국제결혼을 한 친한 조각가의 돌아가신 장인은 서양인이셨다. 이분은 이대원 화백의 화풍을 차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작품은 한국화는 아니다. 반대로 이대원의 작품은 우리나라의 농원을 이대원 방식으로 풀어냈다. 정확히 한국화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한국적인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정선이나 김홍도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화가 될 수 있는 특징은 한국적인 주제나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경우에 이조백자의 균열을 표현한 최영욱 작가나 붉은 산수를 그리는 이세현 작가는 한국화 작가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 없을까? 서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쓰더라도 한국적인 소재를 주제로 삼았다면 한국화라고 볼 수 있을까? 전통적인 재료나 기법을 사용해서 홍콩이나 뉴욕의 야경을 그린 것은 한국화라고 분류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류 외에도 한국인이 갖고 있는 특유의 감성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한국화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맞을까? 글을 쓰다 보니 한국화냐 한국적인 작품이냐라는 구분이 머리를 짓누른다.

진경산수는 한국화고, 실경산수는 중국화냐는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 이전의 동양화는 협의의 한국화다. 그렇다면 광의의 한국화를 어느 범위까지 확대 인정할 것인가? 쉽게 풀어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전문가들이 정의해주는 것이 나을 듯하다. 너무 어려운 주제를 건드렸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미술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

2017. 10. 13 아트스페이스 H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