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전시장 가는길 3'
[권도균의 그림 이야기] '전시장 가는길 3'
  • 권도균
  • 승인 2017.12.21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아트스페이스H] '하나의 공간에 두 개의 시간 속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화가 김주희의 이미지 오버랩 이야기​'

철학을 공부하면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윤회가 미래의 환생도 있지만, 과거로의 환생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공간 다른 차원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김주희, '디지니랜드'. oil on canvas, 53 x 40.9cm, 2017.
김주희, '디지니랜드'. oil on canvas, 53 x 40.9cm, 2017.

밤새 눈이 왔다. 길에는 눈이 쌓여있고, 찬바람이 세차게 얼굴을 때린다. 출근 버스를 탄다. 평소처럼 의자에 앉아,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읽는다. 한성대 입구역에 거의 도착했을 때, 페이스북 친구인 젊은 여자 작가의 글을 발견한다. 오늘 개인전 오픈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제발요.

젊은 작가들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제발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울린다. 마침 전시장이 한성대 입구역 근처인 아티온 갤러리라서, 전시를 보러 가기로 결정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발길은 전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밤새 내린 하얀 눈은 이미 더러워졌고, 길은 지저분해졌다. 질척 거리는 눈을 밟으며 길을 걷는다. 친한 작가도 아닌데, 그냥 발길을 돌려 갤러리로 출근할까?

혼자서 투덜거리다 보니, 어느새 전시장에 도착했다. 세 사람이 작품을 분주히 설치하고 있었다. 설치하는 분은 작가의 아버지, 옆에 보조자는 작가의 남편, 그리고 작가가 서있다. 작가의 표정을 보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의 방문이라서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갤러리 대표도 아는 체를 한다. 전시 작가는 김주희 작가다. 전시 제목은 'Layered City'란다. 중첩된 도시(?)라고 번역해야 할까?

전시장 오프닝에 가면 제일 많이 나오는 문구가 있다. 축하해요 또는 좋네요. 작품이 어떻게 왜 좋은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좋단다. 어린 작가나 젊은 작가의 작품은 허점도 보이고, 아직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장점과 단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시장 금기 사항은 절대로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표출해서는 안된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상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전 어느 날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김주희 작가가 자신의 작품 이미지가 들어간 머그 컵을 가지고 갤러리에 왔다. 작품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이야기 해달란다. 잠시 망설였다.

우리 작가도 아닌 처음 보는 작가고, 과거의 수많은 경험상 서로 기분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간절히 원했다. 어떤 말을 해도 괜찮단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미술 문외한이 지껄이는 헛소리라는 단서를 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품에 관한 첫인상은 카메라가 흔들려서 초점이 안 맞아 피사체가 제대로 찍히지 않은 사진 느낌이었다. 마치 가물가물한 기억을 보여주는 느낌 같기도 했다. 색감은 너무 강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현란한 조명으로 빛을 내는 도시의 야경을 좋아하는 듯하다고도 생각했다. 작품 속에 드러난 작가의 내면은 추측건대, 주목받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승부 근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작가님,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기존의 작품에서는 두 가지의 불편한 점이 느껴지네요. 작품을 들여다보면, 경주 안압지 이미지와 영국 런던 아이 관람차가 오버랩 되는데, 이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어릴 적 창경원에 가면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던 놀이동산 관람차가 있었다. 작품 이미지를 보는 순간, 창경궁과 놀이동산의 이미지 오버랩의 느낌이 들었다.​

대표님, 저는 그냥 경주에 갔을 때 런던 아이가 떠올라서 그대로 그렸답니다.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을까요? 각기 다른 두 개의 공간을 하나로 묶는 것이 설득력이 좀 약한 듯해서요. 차라리 한 공간의 과거와 현재를 그린다면,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그리고 저는 색감을 중시하는데, 색감이 무서울 정도로 강렬해서 개인적으로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되네요.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색감 연구를 조금 더 하시면 좋을 텐데요. 이 두 개의 멘트를 하고 나서 작가의 얼굴을 보니,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후회감이 몰려왔다. 또다시 솔직하게 괜한 이야기를 했구나라고 자책했다. 미술을 잘 모르는 문외한 주제에 말이다.​

예술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기초 상식조차도 없다. 나의 탐구 방식은 예술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해서, 논리적으로 추론을 할 뿐이다. 예술은 시각언어라고 한다. 시각언어란 시각적 대상을 통해서, 작가의 생각을 잘 표현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에는 작가의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담겨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의 시간이 흘러갔다. 우연히 김주희 작가의 페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작품을 보게 되었다. 작품이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공간의 오버랩을 시간의 오버랩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색감에서 강렬함과 무거움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산만함에서 안정감으로, 강렬한 색감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색감으로 바꾸어져 있었다. 작품이 훨씬 좋아지고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느낌이 있는 작품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김주희 작가는 진행형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려는 의지와 열정이 강해 보인다. 작가의 생각을 조금 더 정제해서 간결하게 표현하면, 더욱 좋을 듯하다. 필요 이상의 군더더기를 작가 스스로 단순화하면 어떨까?​

좋은 작품이란 작가의 생각이 분명히 전달되어야 하고, 작품이 살아 있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 느낌은 작품을 갖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느낌은 음식 맛을 완성하는 조미료다. 현재로는 느낌의 강도가 아직도 부족하지만, 최근의 노력과 작가의 근성이라면 지금 보다 훨씬 세련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작품을 보면서, 몇 년 후에는 주목받는 작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