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단색화 열풍 살린다...리안갤러리'한국의 후기 단색화' 展
침체된 단색화 열풍 살린다...리안갤러리'한국의 후기 단색화' 展
  • 왕진오
  • 승인 2018.03.0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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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단색화' 열풍이 미술시장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불씨를 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꾸려진 '한국의 후기 단색화'전이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3월 8일부터 진행된다.

김택상, 'Breathing light-persimmon'. Water acrylic on canvas, 193x161cm, 2017.(사진=리안갤러리)
김택상, 'Breathing light-persimmon'. Water acrylic on canvas, 193x161cm, 2017.(사진=리안갤러리)

지난 1월 5일 리안갤러리 서울 전시 이후 대구에서 열리는 순회전인 '한국의 후기 단색화'는 미술평론가 윤진섭의 기획으로 김근태, 김이수, 김춘수, 김택상, 남춘모, 법과, 이배, 이진우, 장승택, 전영희, 천광엽 등 11명의 작품이 함께한다.

전시를 기획한 윤진섭 평론가는 "김환기 이후 해외 시장에서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이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국제적으로 한국을 대표하고 있는 미술사조인 단색화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박서보, 하조현, 윤형근, 정상화 등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70-80년대 작품들이 공급 면에서 어느 정도 고갈된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따른 평이다.

김근태, 'DISCUSSION #2017-25 Purity of Trace'. Oil on canvas, 162.2x130.3cm, 2017.(사진=리안갤러리)
김근태, 'DISCUSSION #2017-25 Purity of Trace'. Oil on canvas, 162.2x130.3cm, 2017.(사진=리안갤러리)

김근태의 작업은 마치 면벽 수도를 하는 것처럼 무형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연관된다. 이는 형태가 없는 화면의 구축을 통해 어떤 정신세계를 드러내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작가는 회화의 근본 원리인 평면성을 용인하고, 여기에 일련의 행위를 가함으로써 "회화는 하나의 평면이다"라는 존재론적 명제에 충실한 작업을 진행한다.

수평선 또는 지평선을 연상시키는 김이수의 작품은 얇은 단색의 띠들이 중첩되어 이루어져 보는 이의 마음을 지극히 평정한 상태로 이끈다.

주로 가로로 된 색의 면들을 무수히 중첩시켜 계조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바다의 수평선을 연상시킨다. 저 먼 곳에 존재하는 수평선을 실은 수평선이 아니라 마음이 그려내는 관념인 것이다.

김춘수, 'ULTRA-MARINE 1759'. Oil on canvas, 162x130.3cm, 2017.(사진=리안갤러리)
김춘수, 'ULTRA-MARINE 1759'. Oil on canvas, 162x130.3cm, 2017.(사진=리안갤러리)

김택상의 단색 화면은 미묘한 뉘앙스의 색의 자취들로 이루어진다. 가을의 나무 위에 매달린 홍시나 잔잔한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그의 그림은 보는 자를 깊은 관조의 세계로 이끈다. 자연의 모습을 닮은 김택상의 작품은 그림 안에서 자연에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김춘수는 물감이 묻는 손으로 캔버스 전체를 누비며 그림을 그리다. 이 때 몸은 정신의 작용에 따라 특유의 리듬을 타게 된다. 작업에 깊이 빠져들수록 몸의 역동성이 더해지면서 정신적인 법열감이 찾아온다.

그의 작업은 무엇보다 '몸성'이 두드러진 몸의 예술이다. 그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며, 신체를 통해 언어 이전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는 원초적 몸짓이다.

남춘모, 'beam 17-20'. Mixed media on canvas, 160x120cm, 2017.(사진=리안갤러리)
남춘모, 'beam 17-20'. Mixed media on canvas, 160x120cm, 2017.(사진=리안갤러리)

남춘모 작품의 사물성은 '만드는' 행위에서 온다. 그리는 행위가 아닌, 만드는 행위 속에 그의 작품의 사물성이 깃들어 있다. 그리는 행위가 범할 수밖에 없는 모사(copy)의 숙명에서 벗어나 사물을 만드는 행위야말로 사물이 세계에 존재하게 하는 요인이다.

법관의 작품은 인과론적 독재의 논리에서 벗어나 상대론적 관계성에 입각해 정신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태도와 연관된다. 그의 그림에는 무수한 빗금들이 존재한다. 이 선들의 공존은 융화의 세계를 이루며, 세계는 다시 반복되기를 그치지 않는다. 법관의 그림은 완성이 아니라 오로지 완성을 지향할 뿐이다.

오랜 기간 파라핀과 숯으로 작업을 해온 이배 작가. 그의 숯은 천연의 재료로서 나무를 태워서 얻어지는 만큼 자연의 본질적인 원소 가운데 하나이다. 숯을 작은 크기로 잘라 캔버스에 무수히 붙이는 이배의 단색 작품은 일종의 오브제 회화라 할 수 있다.

이배, '무제'. Acrylic medium with Charcoal black on canvas, 162.5x130.5cm, 2017.(사진=리안갤러리)
이배, '무제'. Acrylic medium with Charcoal black on canvas, 162.5x130.5cm, 2017.(사진=리안갤러리)

이진우의 단색화에서 한국 단색화의 일반적인 특징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가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검거나 회색, 혹은 푸른 기미가 감도는 작품의 두꺼운 층은 삶과 죽음을 연상시키리만치 묵상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 특유의 아우라가 감도는 장엄한 분위기가 이진우 단색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승택의 '무제-컬러' 연작은 마지막으로 과정을 거쳐 회색, 갈색, 검정 등 주로 무채색으로 마감된다. 표면은 연한 파스텔 톤의 무광택을 띠게 되며, 관객은 눈앞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일한 물체, 즉 '몸'을 보게 된다. 무수히 반복되는 스프레이 작업이 주는 극한적 상황을 통해 몸은 고되지만 정신은 일종의 희열을 느끼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통해 획득된다.

장승택, 'Untitled-Colors 60-16'. Acrylic on plexiglass, 120x97x6cm, 2017.(사진=리안갤러리)
장승택, 'Untitled-Colors 60-16'. Acrylic on plexiglass, 120x97x6cm, 2017.(사진=리안갤러리)

전영희는 이제까지 사용해 오던 회색을 떠나 푸른색의 천연 염료인 쪽을 사용하고 있다. 최신작들은 선과 면을 중심으로 전작에 비해 더 단순화되고 절제된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회화적 실험이다.

천광엽의 단색화 작품은 초기에는 점자를 연상시키는 점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은 선적인 요소로 발전했으며, 결국은 무수한 점들이 선이 되고 선이 중첩돼 면이 되는 평면의 논리 위에 형성됐다. 전시는 4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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