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정현, 버려진 재료로 현대 사회를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 표현
조각가 정현, 버려진 재료로 현대 사회를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 표현
  • 왕진오
  • 승인 2018.04.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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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포=왕진오 기자] 물질에 응축된 시간과 힘을 드러내며 인간을 성찰해 온 조각가 정현(62)의 대규모 개인전이 4월 10일부터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전시 작품과 함께한 정현 작가'.(사진=금호미술관)
'전시 작품과 함께한 정현 작가'.(사진=금호미술관)

정현 작가는 폐한옥에서 남겨진 목재 잔해와 경남 지역의 서원에서 나온 낡고 거대한 대들보를 재료로 한 신작을 2016년 프랑스 팔레 루아얄 정원 전시 이후 국내에서 처음 갖는 전시이자 금호미술관에서 2001년 이후 17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조각가 정현이 선택하고 사용하는 재료는 대부분 그 용도를 다한 것들이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낡고 버려져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침목, 석탄,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등의 재료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끌어낸다.

혹독한 시련과 무게를 견디고, 인고의 시간을 지나온 물질들이 조각으로 변하는 과정은 작가가 압축된 에너지와 유구한 세월을 마주하며 재료와 나누는 대화이다.

그는 문명을 지탱하던 물질들이 질주의 행로에서 밀려나 자신이 위치했던 문명과 거리를 두고, 반목이 아닌 수용을 통해 과거를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정현, '무제'. 나무에 먹물 착색, 280x335x335cm, 2018.(사진=금호미술관)
정현, '무제'. 나무에 먹물 착색, 280x335x335cm, 2018.(사진=금호미술관)

정현은 재료에 지나친 변형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재료와 조응해 그 특성을 잃지 않도록 작업한다. 폐재료가 품고 있는 힘을 표면 밖으로 끌어내는 것에 주력한다.

이번 전시에는 폐한옥이 철거되며 남겨진 잔해인 폐목들을 주요 소재로 작업한 작품을 선보인다. 100년 가까이 된 고가옥의 목재는 질곡의 시간과 우리 삶의 고난의 기억들을 응축하고 있다.

단순히 버려졌다기 보다는 굴착기로 찍어 내리면서 부서지고 찢기어진 나무는 기묘하게 날 선 형태들을 갖게 된다. 단단한 원을 그리며 오른 재료로 강하고 견고한 구축과 응집된 힘의 상승을 보여주는 작업은 잔잔한 파도와 같이 수평적인 형태와 여백 가운데서 날카로운 에너지의 분출을 보여준다.

정현, '무제'. 종이에 콜타르, 39x54cm, 1998.(사진=금호미술관)
정현, '무제'. 종이에 콜타르, 39x54cm, 1998.(사진=금호미술관)

전시장 3층에는 조각 못지않게 정현 작업의 출발점이자 핵심을 보여주는 드로잉 작품을 볼 수 있다. 정현의 드로잉은 구체적인 형상이 나타나기 보다는 산업적인 재료의 물성을 살리며 그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함축적 의미와 상징들이 담겼다.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콜타르를 재료로 한 드로잉 작업은 시련을 거친 하찮은 것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현, '무제'.침목, 300x75x25cm (9EA), 2015.(사진=금호미술관)
정현, '무제'.침목, 300x75x25cm (9EA), 2015.(사진=금호미술관)

한편, 지하 1층에 전시장에는 기존 작업 가운데 주요 작품 및 미공개 작품들이 함께한다. 2016년 파리 전시에서 선보인 침목 조각들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시 선보인다.

오랜 시간동안 철도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친 비바람을 맞은 이 재료를 작가는 전기톱과 도끼로 자르고 찍어내어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침목의 팍팍함과 나뭇결은 현대 사회를 이겨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을 나타내며 인체의 모습은 거의 사라진 채 나무 원재료의 질긴 추상성만 그대로 작품에 드러난다. 철도에 누워있었던 침목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시민들이 다시 일어난 것처럼 작가로 인해 다시 일어섰다.

정현,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나무, 먹물 착색, 60x830x140cm, 2018.(사진=금호미술관)
정현,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나무, 먹물 착색, 60x830x140cm, 2018.(사진=금호미술관)

작가는 잘라낸 침목을 얼기설기 붙여 마치 작은 몸집에 품고 있던 인간의 존재가 거대한 실체로 다가오는 듯이 작은 군상을 만들어낸다. 전시는 5월 22일까지.

(아트인포=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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